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색(色)의 추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신정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녀의 자서전 내용에 의하면,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때 그녀에게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 자리를 제안했고, 밤늦게 호텔로 불러냈으며, 호텔 바에서 스킨십을 시도하는 등 도덕관념이 ‘제로’였다고 한다. 또한 유력 신문의 C 기자는 동승했던 택시에서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내용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거론된 두 사람은 상당한 정치적 및 사회적 명예에의 타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유력 인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부수가 판매되어 출판사에서는 추가로 책을 찍어 내고 있고, 노이즈 마케팅이니 신정아가 얼마를 벌 것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무너지고 있다. 그녀의 말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미 그녀는 이른바 ‘가짜 예일대 박사’라는 학력 위조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녀의 일생과 행적을 추적하면서 ‘사이코패스’ ‘반사회성 인격 장애’ ‘공상 허언증’ ‘과대 망상장애’ 등의 표현으로 설명하곤 했다.

또한 사회 전반의 다른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학력 검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엄청났던 후폭풍을 몰고 갔던 그녀가 이제 돌아와서 제2의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젠 자유의 몸이 되어서 말이다.
한 마디로 그녀의 복수다. ‘내가 그렇게 사회에서 매장되었으니 너희들도 한 번 당해 봐라’의 심리다.

그녀가 말하는 ‘너희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잘났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점에서 슬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과거 전력으로 비추어 볼 때 보통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의심해 ‘또 거짓말을 한다. 이제는 거짓말을 해서 책을 팔아 돈까지 벌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별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그녀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그녀에 대한 비판과 다그침보다는 거론된 당사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들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의 속성일까, 대중의 무지일까, 아니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부산물일까? 어느 쪽이 얼마만큼 기여하든 상관없다. 국민들은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내저으면서 “도대체 국무총리고, 국회의원이고, 대학교 총장이건 간에 다들 왜 그런대?”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존경할 만하고 본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해지고 발전한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 및 권력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그저 나와 똑같거나 어쩌면 내 친구의 품성보다도 못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누가 그들을 따르고 본받겠는가. 그저 공부 좀 잘하고, 인맥 좀 잘 형성해서, 운 좋게 높은 자리 꿰찬 사람들이려니 간주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슬프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나’라는 국민 한 사람보다는 훌륭한 사람이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사람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당사자들은 물론 억울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분들이 그랬을 리가 없다. 정신상태가 다소 이상한 여자가 하는 말을 왜 믿는가”라고 반응하지 않는가. 그래서 또 슬프다. 그리고 왜 그분들의 가까운 명사들 역시 언론에 나서서 “그랬을 리 없다. 평소 내가 아는 그분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론하지 않는가. 그래서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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