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변화, 그 이상의 변화’.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첫 비대위 회의를 열었던 회의실 벽에 내걸린 뒷걸개의 문구다. 지난 총선 참패를 통해 이제는 변화 할 수밖에 없게 된 통합당이지만, 앞으로는 변화보다 ‘더 큰 변화’를 지향하겠다는 각오인 만큼 그 의지는 높이 평가할 대목이다. 어쩌면 김종인 비대위체제를 관통하는 통합당 존망의 승부수처럼 보인다. 게다가 안팎으로 표방한 혁신 슬로건도 ‘약자와의 동행’을 제시했다. 과거의 통합당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화두였다.

이렇게 출발한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체제는 연일 국민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첫날 비대위 모두발언을 통해 통합당을 ‘진취적인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진취적 정당, 김 위원장은 ‘진보보다 더 앞서 가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책 아젠다도 통합당이 선도적으로 이끌어 가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통합당의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본질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정부의 3차 대규모 추경안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기준만 있다면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날만 새면 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았던 과거의 통합당 모습이 아니다. 뭔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질 것 같은 기세다.

이 뿐이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통합당의 진취적 변화와 함께 정책 아젠다를 선도하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에서 앞으로 ‘깜짝 놀랄만한 것’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놀라지 마시라는 농까지 던졌다. 깜짝 놀랄만한 정책 아젠다, 그게 무엇일까를 생각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몇 되지가 않았다. 대체로 북유럽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기본소득제’를 말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오랫동안 거론됐던 주제였으며, 여권 일각에서도 꾸준하게 논의해 왔던 정책 아젠다였다. 그러나 이 엄청난 경제 담론을 통합당에서도 제시한다면, 정말 ‘깜짝 놀랄만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예상은 적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이 3일 “당이 ‘실질적 자유(real freedom)’를 어떻게 구현해낼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기본소득제 도입을 사실상 공식화 하는 발언을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보수가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가치는 자유”라고 강조하면서, 다만 “형식적 자유는 전혀 의미가 없다. 정치의 가장 기본 목표는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하는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그 방안으로 김 위원장이 제시한 정책 아젠다가 바로 기본소득제라 하겠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모든 개인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에서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당시의 위기 극복 가운데 하나의 방안으로 등장했던 개념이다. 기본소득제를 구성하는 주요 개념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마디로 파격적이긴 하지만, 포퓰리즘 우려가 쏟아질 정도로 아주 논쟁적인 정책이다. 실제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교수가 기본소득의 논리를 역설할 때도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그 이후 북유럽에서는 부분적으로 기본소득제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국가의 전통이 강하고 인구가 적다는 장점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모든 국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문재인 정부도 기본소득제 만큼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 무상급식도 반대했던 통합당이 먼저 치고 나오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김종인 비대위체제라고는 하지만 파격을 넘어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일이다.

통합당이 막판까지 이러한 기조로 변화하고 진화한다면 그것은 결국 한국정치에도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틈만 나면 ‘보수’니 ‘자유 우파’니 하면서 상대방을 향해 좌파정권,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매도했던 통합당의 변화 치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혁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제대로 된 정책경쟁도 가능할 것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대안야당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야당이 건강해야 여당도 건강해진다는 얘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과연 어느 수준까지 당을 변화시키고 혁신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종인 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그의 머리로 구상해서 그의 입으로 거론한 그의 얘기일 뿐이다. 당내 진지한 토론이나 논쟁이나 그 어떤 성찰도 없었다.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김 위원장 ‘단독 플레이’만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 어떤 전향적 변화라고 하더라도 통합당의 체질개선이나 정책혁신, 인적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김 위원장의 사견’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대위를 맡은 만큼 잠시 국민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깜짝 쇼’ 같은 이미지 전략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하루빨리 당헌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당의 헌법을 바꿔서 최근의 발언이 단순한 ‘쇼’가 아니라 ‘혼(魂)’임을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뿐이 아니라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 특히 원내전략의 혁신적 변화를 통해 정책 아젠다를 주도하는 야당으로 재건시켜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당내 그 많은 구태세력들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을까. 솔직히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김종인의 길’이 옳고 신선하다. 그 길이 몇 년 더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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