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해 중국 성도로 여행가서 그곳에 자리한 두보(杜甫) 시인의 거처지, 초당(草堂)에 들러 이곳저곳을 둘러본 적이 있다. 공원 속의 건물이다 보니 인위적으로 꾸며진 면이 조금 있어 보이기는 하나, 초가집과 흙 마당은 두보 시인이 살았던 그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두보가 안록산의 난(755∼763)을 피해 잠시 성도에 머물면서 많은 시를 썼는바, 그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은 고향을 그리워하면 쓴 오언절귀의 다음 두 작품이다.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강벽조유백 산청화욕연 금춘간우과 하일시귀년).’ 뜻풀이 하자면 ‘강물이 파라니 새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빛이 불붙는 듯하도다/ 올봄이 보건대 또 지나가나니/ 어느 날이 이 돌아갈 해 인고?.’ 이 시는 필자의 학창시절 국어교과서 고문 편에 실렸으니 지금 6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시이다. 또 하나는 제목이 귀안(歸雁)으로 이 역시 고향을 그리워 한 시이다. 

‘봄에 와 있는 만리 밖의 나그네는/ 난이 그치거든 어느 해에 돌아 가려느뇨./ 강성의 기러기가/ 높이 날아 (내 고향) 북쪽으로 날아가매 (나의)애를 끊는구나(春來萬里客 亂定幾年歸 腸斷江城雁 高高正北飛)’. 이 두 편의 시는 53세 난 두보 시인이 봄볕이 타들어 가는 객지의 초당에서 안록산의 난이 끝나 언제쯤 고향에 돌아가며, 죽어서라도 고향(故鄕)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수구초심(首邱初心)의 시름을 달래며 쓴 시였다.  

자연현상에 따른 봄이 오고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테고, 계절을 맞고 보내는 사람의 감정은 그때그때 환경과 사정, 혹은 여건에 달라 다르겠지만 2020년 한국사회에서 필자가 느끼는 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정초만 해도 올해는 무엇이 달라지겠거니 4.15총선이 있는 해이니 헝클어진 정치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겠지, 엉망진창이 돼버린 경제도 지난해보다는 다소 나아지겠거니 그래서 서민들의 삶에서 일말의 희망이 있겠거니 기대를 했었는데 뜻하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이 닥쳐와 그 기대들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좋은 시간, 아름다운 계절에 병마가 들이닥쳐 온국민이 시름하였으니, 정초에 품었던 작은 기대감조차 파산이 났고,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찾아든 봄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사회에 숱한 사회적 이슈와 현안들이 쌓였건만 속절없이 시간만 갔다는 게 나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타는 봄빛 속에서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코로나19로 축 처진 어깨를 받쳐주기 위해서라도 현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게 뭐 없을까 생각하다가 생뚱한 시 한편이 생각났다. 이 시가 시의에 맞지 않아 억지웃음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이 글을 쓴다.  

‘김수영(1921~1968)’이란 시인이 있다. 김 시인을 계략적으로 설명하면 1941년 선린상고를 나와 그해 일본 도쿄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다시 연희전문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녔다. 그 후에는 선린상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신문사 문화부 기자생활하면서 시를 썼는바,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김수영의 시에는 ‘김일성만세’라는 시가 있다. 먼저 밝힐 것은 김 시인은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이 시를 쓰던 1960년 당시 한국 상황에서, 언론출판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는 민주주의도 없고, 자유주의도 없다는 점을 김 시인이 강조하기도 했던바, 그는 의용군으로 나가 포로로 잡혀 거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인물이다. 하지만 김 시인은 이 시가 “김일성이 훌륭하다고 찬양하라고 선동”한 것은 결코 아님을 천명하기도 했는데, 이 시가 발표된 당시에도 쇼킹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의 시 「김일성만세」 1960.10.6.).

코로나19 시국에서 속절없이 보낸 봄을 생각하며, 두보와 김수영의 시를 떠올려봤지만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엄청 답답하다. 제대로 된 게 없어 보이는 거북함의 연속이다. 거리를 지나면서보니 지저귀는 새소리는 곱고 피어난 꽃들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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