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렸다. (출처: 뉴시스)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렸다. (출처: 뉴시스)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일주일째

코로나 봉쇄해제에도 또 록다운

28년 만에 폭동진압법 검토

“미 소프트파워 빠르게 고갈돼”

[천지일보=이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해제에 돌입했던 미국이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직면 하면서 다시 ‘록다운(lockdown, 봉쇄)’ 상황에 접어들었다.

시위가 일주일이 되는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미 전역이 약탈과 방화, 폭력 시위로 얼룩졌고 주요 도시의 상점들도 다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위대의 약탈 대상이 된 대형마트 타깃을 비롯해 대형약국 체인 CVS, 유통업체 월마트,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 영업점 등이 임시 폐쇄에 들어갔다. 아마존 또한 시카고와 LA, 시애틀, 미니애폴리스 등지에서 배달 영업을 중단하거나 배찰 차량의 노선을 조정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애틀란타 등 주요 도심의 상점과 쇼핑몰은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다. 약탈과 방화 피해를 보면서 도심 상점가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고, 진열창 앞에 합판 가림막을 설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모든 도심의 주 정부 건물을 폐쇄하기로 했다.

CNN방송에 따르면 미 전역의 40개 도시가 통금령을 발동했고, 50개 주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개 주가 방위군을 소집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을 ‘법과 질서의 대통령’으로 선포하고 군력을 배치해 폭력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초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CNN,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수천명의 중무장한 병사, 군인, 경찰관 등을 배치해 질서를 잡겠다”며 대통령의 특권을 총동원하겠다고 이같이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시위사태에 대한 대국민연설을 한 후 경호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유서깊은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 서서 성경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시위사태에 대한 대국민연설을 한 후 경호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유서깊은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 서서 성경을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할 동안, 백악관 앞 평화 시위대와 경찰은 충돌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시위대 해산 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를 찾아가 성경을 손에 든 채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개 도시에서 시위와 함께 방화나 절도가 발생하는 데 대해 주지사들이 너무 ‘약하다’며 단속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과 법 집행부, 국가안보 담당자들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도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체포해야 하고 추적해야 한다. 10년 동안 감옥에 가둬야 다시는 이런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지사들이 주 방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을 경우 평화 유지를 위해 ‘수천명’의 병사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대민지원법(The Posse Comitatus Act)에 따르면 연방군은 체포, 재산 압류, 수색 등 국내 법 집행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폭동진압법(Insurrection Act)을 동원해 연방군의 법 집행을 허용할 수 있다. 이날 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폭동진압법 발효를 검토 중이라는 백악관 소식통의 발언을 보도했다. 폭동진압법이 마지막으로 발효된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당시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요청에 따라 군 투입이 이뤄졌다.

그러나 아직 어떤 주에서도 필요성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연방군까지 투입해야 하냐는 여론도 거세지는 모양새다. 지역 경찰과 주 방위군만으로도 치안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와 시장들도 수용할 수 없는 안이라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시위가 이어져 시위대가 타코마의 한 교차로에 8분46초 동안 엎드려  교통을 막고 있다. 8분46초는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 경찰관 데릭 쇼빈에게 목을 눌린 시간이다. (출처: 뉴시스)
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대한 시위가 이어져 시위대가 타코마의 한 교차로에 8분46초 동안 엎드려 교통을 막고 있다. 8분46초는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 경찰관 데릭 쇼빈에게 목을 눌린 시간이다. (출처: 뉴시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흔들리던 미국의 위상이 경찰의 폭력과 인종차별로 한층 더 훼손됐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진단했다. 한때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로 알려졌지만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하고, 학생들에게 테이저건을 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선 사실이 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이런 인식을 통째로 뒤흔든 것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반응은 세계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 통치 아래 미국의 명성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준다고 FP는 보도했다.

한 유럽의 고위급 외교관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예상보다 빨리 소멸됐다”며 “미국의 군사적인 우위나 경제적인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정치적인 여력이나 소프트파워는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동맹국들마저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절연을 선언했을 때 동맹국 중 어느 곳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으며 다음달 개최하려 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참가 거부로 연기됐다. 유럽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마저 이날 백악관이 러시아 G7 재가입을 시도하려 한다면 이를 막겠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토머스 그린필드 전 차관보는 미 경찰의 폭력 행위와 항의 시위는 “큰 퍼즐의 조각일 뿐”이라며 “세계에서 우리의 형세는 이미 줄어들었으며 이번 사안은 다른 국가들이 우리의 지도력에 물음을 제기하는 하나의 이유를 더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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