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승리 기사.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1
봉오동 전투 승리 기사.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1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에 참여 대승’
‘간도·연해주 일대서 대일항전 전개’
‘봉오동전투 승리 기사 등 9점 전시’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임병극을 2020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6월 한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봉오동전투 승리 기사 등 9점을 전시한다.

1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임병극은 1885년 평안도에서 태어났으며, 1917년 북간도로 망명한 후 대한국민회 외교실행위원으로 선임돼 중국 관·군의 협조를 얻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1920년 초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단들이 통합을 모색한 결과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에 임병극이 활동하던 대한국민회군도 동참했다.

임병극은 대한북로독군부의 피복과장으로 선임돼 독립전쟁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책임졌다. 또한 대한국민회군 제2중대장으로 임명돼 독립전쟁의 일선에 나섰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와 10월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 연합부대의 중간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을 인솔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데 힘을 보탰다.

청산리전투 후 임병극은 부하들과 백두산 서쪽의 안도현으로 이동해 의용대를 조직하고 1921년 4월 말까지 군자금 모집·일제 침략기관 공격 등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했다. 이후 근거지를 한·중 국경지대인 장백현으로 이동해 대한독립군비단에 합류한 후에는 경호부장으로도 활동했다. 1922년 중반 연해주로 이동해 고려혁명군에 참여한 그는 남부사령관으로 임명돼 국내 진입 작전도 시도했다.

국민대표회의 선언서.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1
국민대표회의 선언서.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6.1

1923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편과 독립운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고려혁명군 대표자격으로 참가해 임시정부의 개편과 무장투쟁 실천을 주장했다. 국민대표회의가 끝난 후 연해주·북만주를 거쳐 연길로 돌아온 그는 3·1운동 5주년에 맞춰 간도 일대의 일본영사관 파괴·친일파 암살 등 의열투쟁을 계획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지하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4년 9월 중국군에 체포돼 징역 15년을 언도받았다. 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전쟁에 참여한 임병극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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