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빨랐어도… 빈곤·불평등에 코로나 확산한 페루의 비극
방역 빨랐어도… 빈곤·불평등에 코로나 확산한 페루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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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의 한 슈퍼마켓에서 남성들이 장을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보건 비상사태가 발효 중인 페루는 성별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면서 금요일에는 남성만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집에서 나올 수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달 3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의 한 슈퍼마켓에서 남성들이 장을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보건 비상사태가 발효 중인 페루는 성별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면서 금요일에는 남성만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집에서 나올 수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페루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배달 주문, 야간통행금지, 국경폐쇄와 같은 엄격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취한 나라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26일(현지시간) 기준 페루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2만 3979명에 사망자도 3629명(월드오미터)에 달해 세계 12위에 오른 코로나 최대 피해국이 됐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이날 CNN방송은 초기 방역 조치를 잘 했다고 평가 받는 페루가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데와 관련 빈곤으로 인한 취약한 사회적 기반을 꼽았다. 재빨리 국경을 폐쇄하고 엄격한 봉쇄 조치 등을 했어도 나라 자체가 너무 가난해 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과 페루는 코로나19를 완전히 다르게 다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위험성을 경시했으나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 대통령은 지난 3월 15일 자체 검염 의무화 조치가 포함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을 폐쇄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똑같이 폭증했다.

미주 대륙에서 가장 빠른 조치를 취했던 페루가 아무런 조치가 없던 브라질의 피해 상황과 큰 차이가 없게 된 데는 남미 나라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빈곤과 불평등, 사회 기반 악화 등이 꼽힌다. 열악한 의료 시스템은 쉽게 무너졌다. 페루 의대의 알프레도 셀리스 박사는 “이번 상황은 단순히 건강상의 비상사태가 아니라 대유행이 보건 분야의 대응 능력을 능가하는 상황으로 정의된다”고 CNN에 말했다.

의사인 엘머 후에르타 박사는 페루 내 극심한 불평등을 꼽았다. 그는 “이 바이러스가 이곳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페루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일, 음식, 심지어 은행 거래를 위해 집 밖에서 모험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2017년 페루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페루 가정의 49%만이 냉장고나 냉동고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비축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식량을 얻기 위해 시장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후에르타 박사는 전했다. 페루 정부가 강제적인 봉쇄 정책을 제정하고 통행금지를 시행하고 약 한 달 후인 4월 14일 CNN계열사인 TV페루가 리마 외곽의 한 시장 밖에서 찍은 사진은 이것을 증명했다. 시민들은 식량을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고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당시 줄을 서 있던 한 여성은 TV페루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인파를 견뎌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먹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정부에서 코로나19 재난기금을 풀었지만 은행에 시민들이 몰려들게 하는 분배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루의 경제학자이자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의 조교수인 크리스티안 로페즈 바르가스는 “페루의 가장 취약한 수백만 가정을 돕기 위한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좋은 생각이었으나, 그 분배는 형편없이 설계됐다”고 비판했다. 페루 은행 규제 단체는 작년 보고서에서 성인의 약 38%만이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금융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지원대상자들이 돈을 받기 위해 직접 은행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못한 채 은행에 장사진을 이뤘다. 로페즈 바르가스는 “이런 정책들은 은행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도록 유도해 불필요한 피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8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 외곽의 카야오에서 경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정부가 선포한 통행금지령을 어긴 한 남성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8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 외곽의 카야오에서 경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정부가 선포한 통행금지령을 어긴 한 남성을 체포해 연행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일상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환경 또한 페루의 코로나19 확산 원인으로 꼽힌다. 로페즈 바르가스에 따르면 페루 가구의 30% 이상이 과밀 상태로 살고 있으며 이들은 한 방에서 4명 이상이 잠을 자고 있다. 페루의 국립통계정보연구소에 따르면 72% 이상이 비공식 부문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닌 집 밖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다. 로페즈 바르가스는 “붐비는 시장에서 음식과 다른 물품을 얻기 위한 수백만명의 요구가 결합된 ‘폭발적 혼합’”으로 페루에서 코로나19가 폭증했다고 판단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비스카라 대통령은 6월 30일까지 비상사태를 연장하고 전국에 자체 의무 검역과 야간통행금지를 유지하기로 했다. 긴급조치가 연장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용실, 음식 배달, 치과 등의 서비스를 포함한 특정 업종의 재개장은 허가했다.

페루의 건강지침 시행 우선순위 또한 비상사태 선포 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비스카라 대통령은 봉쇄 명령을 한 4월 초 첫 주 동안 재택근무를 하지 않은 3천명을 구금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었다. 그러나 25일(현지시간) 그는 “많은 피해를 입힌 사회적 행동을 바꿔야 한다”며 시장에서 보건지침이 시행되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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