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 왠지 듣기만 해도 건전해지고 숙연해지고 다짐하게 하는 묘한 힘과 매력을 가진 단어다. 모든 단어와 글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이 정의란 단어는 ‘문화(文化)’라는 단어가 말하듯이, 정의라는 글이 실제 정의로움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실체를 연상케 하는 아주 경건한 단어다.

이처럼 숭고한 단어가 언젠가부터는 아주 추하고 비겁한 사람과 세력의 전유물이 돼 있음을 생각할 때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정작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정의롭다 말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세상은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의(正義, justice)란 사전적 의미로 사회와 공동체 나아가 국가와 인류를 위해 옳고 바른 도리를 행할 때 사용되는 지극히 고귀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뜻글자로서 한자의 본질적 의미로 ‘옳을 의(義)’를 파자해 보면 자신이 하늘의 뜻을 위해 희생의 양 즉, 제물이 된 그 분과 같은 사상과 가치관을 갖는다는 의미로서, 정의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하는 것으로 이는 곧 중도며 진실이며 진리인 것이다.

지난 시절로 잠시 거슬러 가보자. 아직까지도 진실공방으로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있는 제5공화국의 출범, 불법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5공 세력의 추한 민낯이 오버랩 되니 어쩌겠는가. 당시 5공 세력은 불법을 합법화 내지 정당화시키기 위한 온갖 공작을 서슴지 않았음은 모두가 다 아는 바다.

특히 괄목할만한 만행은 바로 종교적으로는 ‘청지기교육원’을 출범시켰으며, 정치 사회적으로는 ‘삼청교육대’ 창설이다. 권력으로 기독교 지도자급 목회자들을 회유해 전국 목회자 교육기관으로 출범한 청지기교육원을 통해 소위 ‘이단 정화’를 명분으로 5공 정권을 정당화시키는 데 앞장서게 했으며, 종교를 권력의 시녀로 삼았으며, 종교는 스스로 권력의 시녀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불법을 합법화하는 공모에 가담했고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는 추태를 보였다. 이는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며 일제 만행에 동조하며 일본 천황에까지 절을 했던 한국 기독교 장로교 지도자들의 추한 유전에 의한 것임도 역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또 전국에 불량배 소탕이라는 작전 하에 5공 불법 정권 찬탈에 반기를 드는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고 원천 봉쇄하고자 했던 서글픈 역사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새삼 이런 아픈 상처가 된 기억들을 들춰내는 이유가 뭘까.

지금 우리는 ‘정의’라는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5공의 치부를 살펴봤다. 어쩌면 이보다 더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 또 있을까 싶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은 달랐다. 5공 시절 정부 모든 관공서마다 입구와 사무실엔 여지없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으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어디 있겠는가.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짓과 속임의 유전자는 정권과 정파와 이념을 넘어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정과 정의, 이 거룩한 단어는 오늘 이 순간에도 가장 추하고 더러운 자들의 제물이 돼 만신창이가 돼 굴욕당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국(祖國)은 조국(曺國)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법리와 이념 논리보다 상위 개념이 바로 도덕이며 윤리며 정의며 진실이라는 삶의 본질이 무너졌고, 무너지게 하는 주체는 늘 그 시대를 이끄는 주체 세력이라는 데 공분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참으로 같은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고 창피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발생하고 어지럽게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들 역시 ‘정의연(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등 ‘정의’라는 가장 고상한 단어를 어김없이 악용한다는 사실이다.

정의, 언제부터 가장 고상해야 할 단어가 가장 추하고 더러운 개인과 세력의 불법을 정당화시키는 밑밥으로 전락 돼야 했는지 곱씹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의 가슴에 가장 아픈 기억을 소환해 자신들의 일신과 부귀영화를 위해 악용했고 모두가 그 장단에 춤추게 했다면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나쁜 사람이며 잔인한 사람들이 아닐까.

진정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과 정의롭지 않고 불의하기에 정의를 들고나와 포장하고 왜곡하고 모욕해왔다는 점에 대해 역사는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정의라는 단어 앞에서도 진영이 갈리고 당리당략에 골몰하는 소위 지도층이라 하는 정치 아류들과 천지분간을 못하고 깃발 아래 모여 본질을 퇴색케 하는 무리가 있다면 자중자애(自重自愛)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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