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6. ⓒ천지일보 2019.12.30
통일부. ⓒ천지일보DB

“남북 교류에 더 이상 장애 안 돼”

정치권 반응 엇갈려… ‘환영’ vs ‘비난’

전문가 “남북 진전 위한 불가피한 선택”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통일부가 22일 앞서 밝힌 ‘5.24 조치 실효성 상실’ 발언과 관련해 “사실상 폐기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온데 대해 “폐기나 해제 선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통일부가 이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면서도 ‘해제하거나 폐기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라는 등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도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사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5.24 조치가 그동안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예외 조치 또는 유연화 조치를 통해서 상당 부분 실효성이 상실됐다”면서 “우리가 남북 교류와 또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5.24 조치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고 이전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여 대변인은 “정부는 5.24 조치가 사실상 해제됐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며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통해 그동안 상당부분 실효성이 상실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대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국방시스템공학과 학생들이 두 동강난 천안함 선체 아래에서 관계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공: 세종대학교) ⓒ천지일보 2018.4.3
국방시스템공학과 학생들이 두 동강난 천안함 선체 아래에서 관계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제공: 세종대학교) ⓒ천지일보 2018.4.3

◆남북협력과 北사과 사이에서 난감했던 통일부

통일부의 이런 태도는 이명박 정부 시절 5.24 조치가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 조치는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로 당시 정부가 내놓은 일종의 대북제재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지원 사업 보류 등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조치를 발표했던 그 이듬해부터 정부는 밀가루·의약품 지원 품목 확대, 종교·문화인 방북 등을 허용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남·북·러 물류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이 조치의 예외로 인정하는 등 유연성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조치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결과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이를 공식 해제하기 위해서는 과거 이명박 정부 등이 요구해온 ‘북한의 천안함 사건 시인과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방발지 약속’을 먼저 받아내야 한다.

북한은 아직 한 번도 이 사건을 그들이 했다고 인정한 적이 없다. 되려 ‘자신들이 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주장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고심 끝에 통일부가 ‘5.24 조치 실효성 상실’이라는 절묘한 발언을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사과 등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이 조치를 해제할 경우 유족 등과 해군 등 이전 정부쪽 인사들과 야당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남북협력 사업 등을 추진하려할 경우 이 조치가 족쇄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입장을 감안한 통일부의 방법론이었지만, 실제 진보·보수 양 진영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여당은 ‘환영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 반면, 야당은 ‘통일부가 무슨 자격으로 실효성 상실을 운운하느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18일 제73차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출처: 세계보건기구 생방송)
18일 제73차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출처: 세계보건기구 생방송)

◆통일부의 발언… ‘대북사업 의지 밝힌 것’ 관측도

문재인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협력 사업이 5.24조치에 반한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었던 만큼 사실상 이 조치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대북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기 후반기 문 정부의 대북 성과라는 측면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 대한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제 북미대화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현실적 방안을 찾아 남북관계를 최대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4.27 남북 판문점공동선언 2주년 기념사에서도 문 대통령은 같은 기조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판문점 선언이 실천되지 못한 것은 국제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 하에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실적 제약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것인데, 코로나19 협력으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동력을 확보해보겠다는 고민의 결과로 읽혔다. 최근 추진 중인 동해 북부선 연결 공사를 시작한 것도 경의선 공사 재개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통일부가 ‘사실상 폐기’라는 단어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향후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서 취해진 조치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 센터장은 “당분간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지는 못하겠지만, 중국과 우선 관광 등 교류를 재개하면서 남측에도 호응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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