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뿌리

박권숙(1962 ~ )

굴착기에 무너진

저녁놀 받아 딛고

무한대에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접점처럼

 

하늘의

뿌리가 걸린

오랑캐꽃 한 송이

 

[시평]

봄이 와서 그런가, 이곳저곳 땅을 파헤치며 공사를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굴착기 기사가 손을 움직이는 대로 굴착기는 성실하게 땅을 파헤친다. 봄이 왔으니, 봄볕이 이렇게 화창하니, 어디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듯이, 사람들은 겨우내 미루었던 공사들을 봄과 함께, 봄의 찬연한 기운 속에 펼쳐가고 있다.

굴착기는 마침내 드넓은 봄 들판을 모두 갈아 엎어버리고, 들판 저 멀리 붉게 물들고 있는 저녁놀까지 갈아엎어 버린다. 그리하여 붉게 물든 하늘과 함께, 무한대에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접점처럼, 무너져 내린 저녁노을의 장엄함 속으로 하루가 저문다.

굴착기가 마지막으로 퍼 올린 붉은 흙더미 아래 대롱대롱 매달린 오랑캐꽃 한 송이, 마치 붉은 저녁 하늘에 뿌리를 내린 듯,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다. 마치 하늘의 뿌리인 양, 오랑캐꽃 천상 저 아득히 먼 하늘에 매달려, 이 봄 노을 속 무너져 내리는 들녘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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