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이천 공사장에서 사람이 38명이 죽고 1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30명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참사가 났는데 정부와 국회 책임자 누구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고 국회의장도 노동부 장관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현미 장관이 ‘반성’한다는 표현은 썼지만 두루뭉술하다. 위정자들이 자신의 책임은 말하지 않고 남의 말 하듯 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하는 행동을 모두 목격한 인물이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당선됐다. 그런 만큼 생명안전에 대한 각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고 국토부 행안부 노동부를 비롯한 각 부처와 지자체에 각별한 대책을 주문하고 실행을 독려하고 점검했어야 했다.

동시에 이천 참사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입법이 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이미 만들어진 법률은 시행령, 시행규칙을 정비해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당황한 정도를 넘어 실망했다. 이제 실망감이 쌓여서 분노로 바뀌고 있다.

이천화재참사가 난 뒤 문 대통령은 여러 가지 말을 했다. 당일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모두 애쓰는 중에 불행한 일이 생겨 너무 안타깝고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생명과 안전이 먼저인 나라를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했다.

참사 나흘 뒤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고가 대형 참사 형태로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다”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냉동창고 화재사고 이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했고 정부도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해왔는데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관리·감독의 책임까지 엄중하게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하면서 “이번 사고처럼 대형 화재 가능성이 높은 마무리 공정 상황에 특화한 맞춤형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 속에서 답답함이 묻어나는 걸 느낄 수 있고 곤혹스러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가 한 말 가운데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알맹이가 빠져있다. 이천 참사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성찰이 빠져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는 했지만 두루뭉술하다.

‘촛불로 집권한 내가 안전을 최우선하는 정책을 확실히 세우고 확실히 집행했다면 이번 참사가 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화재 사고가 났더라도 초기에 진압을 해 참사로 발전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성찰이 담겨있지 않다.

모든 걸 대통령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참사의 원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대책을 만들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도입했어야 했다.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폼 사용을 금지시켰어야했다. 안전감독관 제도를 도입해 안전점검을 철두철미하게 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앞장서지 않으면 민주당도 행정부도 안 나선다. 친기업적 사고에다 복지부동에 익숙한 관료는 더 더욱 안 움직인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게 우리 사회다. 문 대통령에게는 앞장서서 진두지휘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이천 참사가 나자마자 대통령이 현장에 갔어야 했다. 현장에서 “내가 잘못했다” “우리 행정부가 잘못했다”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방안을 내겠다” “공직 풍토를 전면적으로 쇄신하겠다”고 약속했어야 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현장을 방문해서 고인 영정 앞에 사과하고 유가족들을 직접 위로하기 바란다. 그래야 관료도 국회도 사법 당국도 기업도 움직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