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개종 피해 당사자‧가족 호소문-13] 피해자 둘러싼 비난자들… ‘공산당식 인민재판?’ 강제개종의 흔한 수법
[강제개종 피해 당사자‧가족 호소문-13] 피해자 둘러싼 비난자들… ‘공산당식 인민재판?’ 강제개종의 흔한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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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개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우리사회에 이슈화 된 것은 2008년 진용식 목사가 개종을 목적으로 정백향씨를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으면서부터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으로 이단상담소장을 맡고 있었던 진 목사는 정씨의 종교를 포함해 기성교회에서 소위 ‘이단’으로 규정된 곳에 출석하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강제개종을 진행했고, 이후 강제개종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기 목사들이 직접 나서서 강제개종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그 수법이 달라졌다. 먼저 강제개종 목사들은 표적이 되는 신도의 가족에게 먼저 신도가 다니는 교단에 대한 비방으로 공포감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랑하는 자녀나 아내, 부모가 이단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납치‧감금‧폭력 등 불법 행위로 점철된 개종 프로그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한 ‘지푸라기’가 된다. 이같은 이간질에 21세기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강제개종은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본지는 강제개종으로 인해 인권이 침해되고 억압을 받으면서도 하소연 할 곳조차 없는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호소를 연재하고자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개종 목사가 쏟아놓은 비방에

혐오심 가득해진 가족의 선택

안산모교회 데려가 강제개종

 

곳곳 감시카메라, 화장실도 감시

정해진 ‘답’ 거부하면 조롱‧비웃음

개종 된 척 연기하고 빠져나와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개종을 겪은 가정은 대부분 파탄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한다. 가정 파탄까지 가는 이유는 강제개종을 종용하는 목회자 측에서 개종 대상이 되는 이의 종교에 대한 갖은 비방을 가족들에게 심어놓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의 혐오와 증오는 상상을 초월한다. 강제개종 대상자는 마치 공산당식 인민재판을 경험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최소희(가명, 여)씨도 이 같은 강제개종의 피해자다. 다음은 최소희씨 호소문 전문이다.

저는 2005년 7월 말경에 진모 목사의 안산 A교회에 가서 강제개종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병환이 있으신 시아버지께서 제게 전화를 하셔서 언제 오려느냐고 아이들이 보고 싶으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빨리 가자며 짐을 챙겨 저와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습니다.

늘 업무에 바쁜 남편이기에 하루나 이틀 다녀오기도 힘들어했는데, 그날은 천안 시댁에 간 이후에도 다음 날 놀러를 가자고 했습니다.

시누이 집에 아이들을 놓고 시부모님들과 시누이와 남편까지 함께 차를 타고 남편은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잠이 쏟아져 차안에서 잠들었는데 도착해보니 안산에 왔고 작은 원룸 앞에 도착해 들어가 보니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 내외까지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부를 보니 생활용품을 다 싸서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몰래 만나서 저를 이곳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기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남편은 사직서를 내고 왔다며 1년이고 2년이고 제가 신앙을 포기할 때까지 진 목사와 교육받으며 원룸에서 지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신 시아버지만 조용하시고 돌아가면서 제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가정이 시끄럽고 분란이 난다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마음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이미 500만원의 원룸 계약금을 지불하고 막무가내였습니다.

또 남편이 말하길 ‘아이들을 천안시댁으로 전학시켜 놓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지 1년이 채 안 되어 아직 적응도 안 된 아이들을 전학시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저는 강제로 개종교육을 받게 돼 A교회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보니 보드칠판 앞에 전도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책상 앞에 남편과 시누이 남편이 제 양쪽에 앉아 지키고 가족들과 교인들 그리고 예전에 와서 개종 된 다른 교단 교인 등의 사람들이 뒤에 앉아서 지켜보는 가운데 개종교육은 시작됐습니다.

개종교육은 마치 심문받고 조서를 쓰듯이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고, 전도사는 강압적으로 질문을 하며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게 했습니다.

제가 다른 대답을 하면 제가 믿는 교단을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적인 이야기로 응수했고 가르치던 전도사는 말문이 막히자 책상을 치며 흥분했습니다. 이에 친정 아버지는 개종전도사를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교육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지속됐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감시가 붙었고 외출도 못 하게 했으며, 식사도 그곳에서 시켜주는 음식만 먹으라고 했습니다.

교회 건물은 사방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고 목사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교육은 원룸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지속됐는데, 성경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온갖 인신공격과 세뇌식 개종교육에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이곳에 더 있으면 정말 병이 나서 죽을 것만 같이 힘들었고,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고, 궁금해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제 이런 모습을 본 개종목사는 그저 비웃음으로 답했을 뿐입니다.

3일째는 아침부터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진 목사가 들어와서는 인정할 수 없는 말들을 했으나 인정하지 않으면 이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 수긍하는 척을 했습니다.

진 목사에게 ‘왜 이런 일을 하냐’고 하니 ‘돈을 빼내기 위함’이라고 해서 너무 놀랐습니다.

3일째에 어머니는 제게 매달려서 제가 신앙을 포기하면 온 가정이 평안하지 않겠냐고 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했습니다.

그 괴롭고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종 된 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을 속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죄책감이 들었으나, 저는 개종목사가 아닌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개종 교육이 끝난 후에, 제가 개종이 되지 않은 걸 안 가족들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저는 끊임없이 가족들을 설득했습니다.

저와 가족 사이에 개종목사가 없어지니 대화를 통해 저의 신앙을 가족들이 조금씩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개종목사에 의해 우리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전의 화목하고 단란했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강제개종의 진정한 가해자는 개종목사입니다.

이 개종목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족의 사랑을 이용했고, 그 일을 ‘거룩한 사명, 구원의 일’ 이라는 말로 포장을 합니다.

강제개종교육의 피해자로서 이 추악하고 더러운 개종목사의 실체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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