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하
황상하

종교 하면 신과 연결을 시켜줄 수 있는 가교(架橋)의 역할이며, 그 종교 중에는 유불선 즉 유교, 불교, 기독교 이 세 가지를 대표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의 기준을 생각하게 되며, 유교를 믿는 사람은 공자가 전한 말 같이 부모님께 효를 잘하고 나라에 대해 충신 적이며, 불교일 경우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어주며, 기독교의 경우 예수님같이 낮은 자의 자세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개념과 일흔 번에 아홉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개념이 있다. 하여 사람들의 인식에는 종교인이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봉사를 많이 하는 등의 개념으로 종교인들을 생각하고 있다.

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어느 데나 쓰임을 받는 소금이 되며,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곳이 오늘날에 많이 등장하였다.

범인(凡人)들을 신과 연결해주는 선한 곳인 종교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사건이 예장 합동 평양노회 빛과진리교회에서 일어난 신앙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신자들에게 ‘자신의 인분 먹기’, ‘음식물 쓰레기통 들어가기’, ‘공동묘지 가서 서로 채찍질하기’, ‘불가마 들어가서 견디기’, ‘양수리에서 서울까지 제한된 시간 안에 걷기’, ‘잠 안 자고 버티기’ 등을 교회에서 강조하였다. 그것도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교회에서 말이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 사복음서 중 한 곳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난다. 사두개인들의 부활 논쟁 중에 예수님께서 그 논쟁을 그치게 하신 후 바리새인 중 율법사 한 명이 예수님을 시험코자 율법 중에 제일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4-40)라고 질문에 답하셨다.

신앙인들은 순한 양과 같아서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으려고 할 때 따라 들어가는 것과 양치는 목자가 지팡이를 땅에 치면 양들이 따라가는 것처럼 앞에 따라가는 교회의 리더인 목자의 말에 의심 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이 성도님들이다.

이런 성도님들에게 신앙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비윤리적이고 몰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성도들을 세뇌해 신앙에 몰지각 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교회의 리더를 신격화하려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빛과진리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예수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이 사건을 두 눈으로 보셨으면 어떤 말씀을 전하셨을까? 아마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내가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하였고,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자에서 성도들을 섬기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 되라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가?”라고 물어보시지 않으셨을까? 더 나아가서 사 8:20~22에 들어서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숭배하다가 참 빛을 보지 못하여 후에 자기 하나님을 저주한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을까?

아니면 초림 때 성전에서 장사꾼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노끈을 가지고 채찍으로 만들어서 그 성전을 정화한 것처럼 그러하시지 않았을까?

오늘날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몰상식적 행동, 비윤리적 행동들이 교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니,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계시는 것인가? 아니면 살후 2:4에 대적하는 자 곧 사단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성도들을 숭배하게 만드니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장한 사단 곧 마귀가 교회에 군림하여 성도들을 신앙에 몰지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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