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전경 ⓒ천지일보 2020.5.18
전시장 전경 ⓒ천지일보 2020.5.18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展
노랫말 100년史 한자리에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삼백연원안풍은 노적봉밑에 /임자최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가수 이난영(1916∼1965)의 ‘목포의 눈물’이다. 민족과 독립에 대한 표현이 금기됐던 일제강점기에는 노랫말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민족의식이나 독립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노랫말이 만들어졌다.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이란 본래 ‘삼백년 원한 품은’이었다. 노래가 만들어진 1935년으로부터 삼백 년 전 무렵에 일어났던 임진왜란(1592~1598)을 암시한 것이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임’은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조국의 광복’을 비유적으로 드러냈다.

◆대중가요 ‘노랫말’ 조명한 최초 전시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에서는 노랫말의 100년의 발자취와 노랫말에 담긴 우리말이 소개됐다. 대중가요 앨범이나 가수가 아닌 대중가요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랫말은 선율에 맞춰 부르기 위해 쓴 글이다. 음의 높낮이와 빠르기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와 색깔을 갖게 되는 선율은 때로는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한 우리의 삶과 닮았다.

1920년대부터 1945년 이전까지는 식민 지배 아래에서 대중이 겪은 설움과 울분을 비유적인 단어들로 표현하는 시 같은 노랫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알려진 ‘낙화유수(1929)’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노랫말을 수정한 ‘목포의 눈물(1935)’ 등이 대표적이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노랫말이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삼팔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라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이별과 피난의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노랫말들은 대중의 마음을 달래며 인기를 끌었다.

1960~19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고향역(1972)’ 노랫말이 동시에 유행했다. 1970~1980년대에는 포크송과 발라드가 유행하면서 ‘아침이슬(1971)’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이거나 ‘사랑하기 때문에(1987)’처럼 서정적인 노랫말이 대중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1990년대 이후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화적 표현이 한층 자유로워졌다. 한류, K-pop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노래가 주목받는다. 노랫말의 주제와 성격도 이전 시대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표현하라는 자존감과 정체성을 강조한 노랫말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사랑’ 단어 노랫말 가장 많이 출현

노랫말이 담고 있는 삶의 모습과 정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그중에서 시대와 관계없이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단연 ‘사랑’에 관한 것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이 192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2만 6천여 곡의 노랫말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왔다. ‘말, 사람, 눈물, 마음, 가슴, 세상’ 등의 단어도 많이 사용됐다.

“파란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노래 ‘파란나라’는 어린이들이 꿈꾸는 맑고 순수한 미래를 그린 노래다. 어린이들이 꿈과 사랑이 가득하고 울타리가 없는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이 같은 노랫말은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와는 차이가 있다. 음악의 선율과 박자에 맞게끔 말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공통된 점은 노래는 삶 그 자체라는 점이다. 한편 이 같은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기획특별전은 10월 1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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