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대통령을 역사적 인물에 비유해 칭찬하는 것은 지나친 아첨이다. 그런데 요즈음 집권당 일각에선 종종 이런 도가 넘는 촌평이 잦다. 이번에는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된 모씨가 문 대통령을 조선 태종에 비유했다. 그리고 차기에는 현군 세종 같은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역사적 인물은 현대에 와서는 항상 포폄(褒貶)의 대상이 된다.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난을 주도한 인물이 오늘날에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제3대 왕 태종(太宗)은 어떤 인물인가. 부정과 긍정이 엇갈리는 임금이다. 현군 재목임을 미리 알고 왕위 계승의 질서를 파기하면서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것은 결국 훌륭한 일이었다. 이 일 하나만으로도 태종은 명군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왕권을 확립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문치에 힘쓴 것도 업적으로 꼽힌다. 주자소(鑄字所)를 세워 동활자(銅活字)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하륜(河崙) 등에게 동국사략, 고려사등도 편찬하게 하였다. 호포(戶布)를 폐지해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었고, 저화(楮貨)를 발행해 경제유통이 잘 되도록 유의했다. 민생을 각별히 챙긴 일면도 있다.

태종의 이름은 이방원(李芳遠)이며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다. 그는 부친을 도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고려 말 이방원은 매우 무자비한 인물로 비쳐진다. 이성계 무력 집단의 혁명을 저지시키려 했던 당대 최고의 지성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타살했다. 이 사건은 고려 말 수많은 지성인들의 저항을 받았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많은 학자들이 개경을 떠나 산간으로 숨었다. 조선에 대한 저항사를 대변하는 것이 ‘두문동 72현’ 역사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마을이다.

태학생 임선미 등 72인은 마을 동·서쪽에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고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위(魏)·진(晉) 시기 부패한 정치권력에 환멸,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세월을 보낸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풍모를 닮고자 했다.

태종의 비정함은 이복형제들까지 죽이면서 왕위에 오른 데서 잘 나타난다. 조선개국의 최고 원로였던 삼봉 정도전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자신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앞뒤를 안 보고 제거했다. 태조 이성계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 골육상쟁으로 번지자 왕위를 버리고 함흥으로 낙향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륜을 저버린 잔혹한 아들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나중에 환궁을 결심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성계는 태종을 몇 번이나 죽이려 했다. 아들을 죽이려고 까지 한 이성계의 참담함은 어떠했을까.

고려 역사를 무력으로 정지시키고 많은 지성인들의 반발 속에 탄생한 조선. 우리 민족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온 것인가. 무반 세력이 주도한 조선은 사병을 혁파, 군대를 해산하고 명(明)을 이소사대해 국방력을 약화시켰다. 사병혁파는 태종이 주도했으며 다른 무반들의 이반을 우려한 때문이다. 조선은 5백년 동안 미증유의 외침을 받아 역사상 가장 참혹한 국난을 당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고려가 존속됐으면 코리아의 위상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송나라와 교류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우수한 문화국을 창조했을 것이라고 한다.

태종을 문 대통령에 비유한 것은 문비어천가인가 아니면 깎아내린 것인가.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서 비유를 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