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 10일 서울 우이동 한 아파트 부근에서 경비노동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비원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어 있다는 걸 드러내주었다. 한국사회는 약자에게 한없이 잔인하고 강자는 군림하는 사회가 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이 먼저다, 생명이 우선이다, 생명안전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외침이 우리 사회에 울려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생명이 소중하다’는 외침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따라 외쳤다. 돈이 아니라 생명안전을 우선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온 사회에 흘러넘쳤다. ‘생명안전 우선 사회’로 변화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희망의 기운이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무엇이 바뀌었나?

‘주민’이라 불리는 한 인간은 경비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머슴’으로 대했다. ‘내가 돈 주니까 머슴’이고 ‘내가 돈 주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내가 돈 주니까 사표 쓰는 걸 강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존귀한 존재로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지난 3월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퇴직한 조정진씨는 경비원, 주차관리원 등으로 일한 경험을 담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글쓴이는 경비원을 ‘고다자’로 불리는 존재라 했다. ‘고다자’는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말의 머리글자 모음이다. 슬프지 아니한가. 경비원도 분명 사람이고 마땅히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임에 틀림없는데 어떻게 하다가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존재가 됐는가?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지 않는가. 경비원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고 간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비원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제도가 있고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차별이 있고 문화가 있다. 한국사회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사회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국가는 무엇했나? 분명 막강한 무장력과 수사력을 가진 경찰과 검찰이 존재했지만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씨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세금을 한 해 500조씩 거두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최씨가 가해자의 폭력으로 코뼈가 부러지고 발가락 뼈가 부서지고 뇌진탕 증세를 보인다면서 고소했지만 국가기관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12일 후 그는 세상을 등졌다.

한국사회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야만사회인 것 같다. 국민이 폭력과 협박, 욕설에 사표 강요까지 당하면서 괴롭힘을 당해도 경찰과 검찰, 정부와 지자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장 차별받는 지위에 있던 국민이 가해자의 폭력과 치밀한 고강도 압박으로 자살까지 했음에도 사건이 발생하고 나흘이 지난 시점까지 가해자를 연행조차 못한 경찰이다. 법이 무너졌다.

고인이 떠난 지 나흘이 지난 뒤 페이스북에서 박원순 시장은 “우리 모두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의 말 하듯 한다. 해당지역 지자체장으로서 박원순 시장은 지금 무엇을 성찰하고 있는가?

국가기관이 폭력 앞에 이처럼 나약한 존재로 머물고 있으니 가해자가 공권력을 우습게 알고 폭력을 맘 놓고 행사한 것 아닌가? 국가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반사회적인 존재에겐 가차 없이 정의의 칼을 뽑는 존재가 돼야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 국가는 사회적 약자에겐 무관심하고 반사회적 인물에 대해서는 단죄할 의지도 책임의식도 미약한 존재가 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경비원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경비원이 임시직으로 하루살이 목숨인 탓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고용불안과 낮은 처우, 노동권 박탈이 악질적인 갑질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비노동자고용보장법을 만들어서 고용불안을 없애야 한다. 아울러 갑질 폭력을 자행한 자는 가중처벌을 하는 법률을 제정해서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국회, 정부, 사법부, 지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갑질 폭력을 방관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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