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에 붙이는 입춘첩은 복을 비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절기마다 제사 지내 풍년 기원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농경사회에서는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계절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24절기를 정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각각 여섯 개씩 자리 잡고 있는 24절기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며 1년을 이룬다.

하늘에서 해가 1년 동안 움직이는 길, 즉 지구의 공전운동으로 해의 위치가 하루에 1도씩 이동해 생기는 길을 황도(the Ecliptic)라 부른다.

황도상에서 동지(12월 22일경)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해가 15도씩 이동함에 따라 절기가 바뀐다. 각 절기에는 풍속이 있는데 제사를 지내는가 하면, 귀신을 쫓아내고 복을 비는 풍속들이 있다. 이는 우리 민족에 깃든 종교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 ‘입춘(立春)’을 동양에서는 봄이 시작되는 날로 여겼다. 입춘(양력 2월 4일경)에는 농가에서 보리뿌리를 파보고 뿌리가 한 가닥이면 흉작, 두 가닥이면 평년작, 세 가닥이면 풍작이 될 것으로 믿었다. 이를 보리뿌리 점 또는 맥근점이라 한다.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고 적은 입춘첩(立春帖)을 붙였는데 이는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제주지방에서는 ‘입춘 굿’을 하는데 무당의 어른인 수신 방(首神房)이 맡아서 했다. 이때 농악대를 앞세워 가가호호를 방문해 걸립(傑立)하고 상주(上主), 옥황상제, 토신, 오방신(五方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입춘 제사를 지낼 때는 삼재에 해당하는 사람의 무사안일을 위해 삼재 풀이 기도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양력 3월 6일경)에는 임금이 풍년을 기원하며 농업 신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제사를 드렸다.

춘분(양력 3월 21일경)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 이때 사한제를 지내는데 이는 사한단에서 추위와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지내는 제사다.

또한 경칩 무렵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듣게 되는 상황에 따라 한 해 동안 몸의 고단함과 식복(食福) 그리고 농사 풍흉을 점쳤다.

곡우(양력 4월 20일경)에는 봄비가 잘 내리고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 옛날에는 이 무렵 못자리에 쓸 볍씨를 담갔다. 이때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하거나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나쁜 귀신을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을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

하지(양력 6월 21일경)는 해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이라 하며 1년 중 가장 낮의 길이가 긴 시기다.

하지에는 기우제를 지낸다. 가뭄이 계속돼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물제’라고도 한다.

입추(양력 8월 8~9일)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기로 영제(榮祭)라고도 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 산상봉(山上峰)에 단을 만들고 봉화를 올리며 지냈는데 많은 공물(供物)을 바쳤고 무당이 기도했다.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흥인문·돈의문·숙정문에 당하3품관을 파견해 3일간 계속 지냈다. 민간에서도 지냈는데 의식은 기우제와 비슷했다. 추분(양력 9월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 시기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추분에는 인간의 장수를 담당한다고 하는 노인성에 제사를 지냈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인 동지(양력 12월 22일경)는 북반구에서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때 유천동 산신제(柳川洞山神祭)를 지냈다.

조승연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연구관은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데 이는 귀신을 쫓아내는 의미가 있다”며 “귀신뿐만 아니라 액운이나 질병을 물리친다고 해서 솔잎에 팥죽을 묻혀 집안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산신제는 산신령에게 지내는 제사인데 유천동 산신제는 음력 동짓달에 마을 사람들의 나쁜 기운을 막고 평화와 번영을 축원하는 제사 중 하나다.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는 대한(양력 1월 20일경)이다.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까지를 ‘신구간’이라 한다.

이때 제주도 민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를 비롯한 집안 손질을 이 기간에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구간에는 묵은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과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 사이에 구년세관(舊年歲官)의 신들이 신년세관(新年歲官)의 신들과 임무를 교대한다. 이로써 우리나라 절기의 풍습들을 보면 때마다 제사를 지낸 것을 알 수 있다.

장정태 민속종교연구소 소장은 “과거 지역 특성에 맞게 전통촌락에서 지내던 제사의 모습이 지금은 유교와 불교가 도입되면서 절충됐다”며 “지금은 전통적 제사의식이라기 보다 제기그릇 등을 파는 상인이 주는 의식법에 의존해 제사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