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요즈음 지인들과 주고받는 인사는 모바일 상에서 그림이나 동영상이다. 매일 아침 인사를 받지 않으면 궁금해지고 카톡을 보냈어도 답장이 없으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좋은 글이나 감동을 받는 사연들은 지인들과 공유하며 뜻을 같이 하는 시대가 됐다.

얼마 전 한 편의 동영상을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시골 시내버스 안에서 생긴 일로 글을 쓴 이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이다. 사연은 대략 다음과 같다.

경기도 외곽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 정류장에서 노인이 한 분이 탔다. 그런데 노인은 카드나 지갑을 잃어버리고 왔던 모양이다. 노인이 운전사에게 한번 만 그냥 태워달라고 간청하는 것 같았다. 버스 운전사는 대뜸 ‘차비 없으면 내리세요’라고 했다. 노인은 엉거주춤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차 안의 시선이 노인에게 쏠렸다. 청년은 선뜻 앞으로 나가 차비를 내주지 못했다. 버스운전사의 성화가 이어졌다. ‘빨리 내리라고요.’ 이때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가 운전사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열 번 타게 해 주세요!.’

그리고는 가방에서 1만원을 꺼내 버스안의 요금 통에 넣는 것이었다. 차안의 시선이 여학생에게 쏠렸다. 청년은 얼굴이 화끈해 지고 말았다. 노인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자리에 앉는다. 다음 번 정류장에서 여학생이 내리자 양심의 가책을 받은 청년도 따라 내렸다. 청년은 여학생을 불러 1만원을 손에 쥐여 주고는 도망치듯 달려갔다. 여학생이 뒤에서 불렀지만 청년은 그냥 뛰어갔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버스 안에서 벌어진 한 편의 글을 읽고 필자는 감동이 왔다. 노인이 받은 천대는 지금의 현실이고 그래도 아직은 청년과 여학생 같은 착한 젊은이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부 지방에서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시내 버스비를 내지 않는다. 처음으로 이를 시행한 자방자치단체는 충북 영동군이었다. 영동군은 전통적으로 ‘효군’으로 충북에서 가장 많은 효자 열녀 정문(旌門)이 있는 곳이다.

지난 2015년부터 70세 이상 노인의 시내버스(농어촌버스) 이용을 무료화 했다. 이는 ‘70세 이상 어르신 농어촌버스 무료 이용 지원 조례’에 따라 시행한 것이다. 이후 충남도 강원도 등지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무료화 하고 있는 경기도는 아직 시행을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노령화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12년 11.5%에서 2016년 13.2%, 2019년 14.9%로 15%에 육박했다. 2026년에는 한국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인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노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질병을 앓거나 희망이 없을 때 노인들은 생명을 버린다.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충남 보령군이 가족의 달을 맞아 노인들을 위한 자살 예방 꽃 전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한 4~5월은 노인들의 계절성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 그리고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어느 때보다 우울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인 ‘효국(孝國)’이 아닌가. 부모나 노인들을 섬기고 존경하는 것은 ‘인(仁)’이며 인간됨의 도리다. 가정과 사회가 ‘인’을 실천했을 때 화목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의 달 버스 안 어린 소녀의 용기나 청년의 양심이 살아난다면 한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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