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보다 가해자 혀를 옹호했던 56년 전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가 주목받고 있다. 최모씨는 18살이던 지난 1964년 5월 6일 갑자기 키스를 하며 자신을 덮치려던 남성의 혀를 본능적으로 깨물고 현장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피해자 최씨에게 돌아온 건 죄인 취급하는 시선이었다.

세상은 최씨의 성폭행 피해가 아닌 가해자의 혀 상처를 옹호했다. 언론은 키스 한번에 혀가 잘렸다고 보도했다. 법원은 가해자와 결혼을 권하기도 했다. 또 혀를 깨물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지 않았냐. 왜 소리 지르지 않고 혀를 깨물었냐면서 최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상해죄로 실형을 선고했다.

가해자는 사건 이후 적반하장으로 최씨를 협박하며 당당히 지냈다. 반면 출소한 최씨는 따가운 주변의 시선에 죄인이 아님에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떠밀려 결혼도 했으나 금세 이혼했고 이후를 쭉 혼자 지냈다. 힘든 삶 속에서도 최씨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고,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해 그 꿈을 이뤘다.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고, 같은 학교 지인이 읽고 “이 한을 풀자”고 제안하면서 한국여성의전화를 찾게 됐다. 최씨는 “법이 변하지 않으면 후세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자리까지 왔다”며 “억울함을 풀고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재심청구 이유를 밝혔다.

최씨의 56년만의 재심청구는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법원은 한 여인의 인생을 앗아간 결정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최씨에게 무죄가 선고 된다 해도 최씨가 겪은 56년의 세월을 보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가슴 속에 맺힌 억울함과 범죄자라는 낙인만큼은 벗어나 여생을 명예롭게 마무리할 기회는 줘야한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이런 식으로 편견에 갇힌 소수 피해자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 국가란 법이 모든 판단의 기준인 국가를 의미한다. 최씨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지도자부터 감정과 편견이 아닌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끌어가겠다는 확고부동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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