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피해자 최승우씨가 국회의원 회관 문 위 지붕에 올라가서 단식농성을 시작하자 언론이 반응하고 정치권이 반응하고 있다. 최승우씨는 지난해 11월 혹한기에 바람이 세찬 국회 정문 앞 지하철역 지붕 위에 올라가 23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다. 그 때 역시 최씨가 목숨 건 단식을 하고 나서야 언론과 정치권은 반응했다.

언론과 정치권 모두 평상시 관심을 가져할 문제다. 특히 정치권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롯한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음에도 남의 일로 생각하다가 피해당사자가 나설 때만 반짝 관심을 보였다. 스스로의 역할을 망각한 모습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자기 할 일을 회피하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사라지고 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의 삶을 망가트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의 삶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게 국가기관이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존재로 변화됐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과제는 국가, 구체적으로는 정부와 국회가 수행해야 할 일이다. 국가기관이 자신이 할 일을 내팽개쳤다. 피해자가 연거푸 국회 안팎에서 고공 단식 농성을 하도록 내몬 게 국가기관이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국가가 잘못을 범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외치지 않아도 진상규명하고 배·보상하는 일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형제복지원을 포함한 과거사 법률안은 오랫동안 행정안전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국회법상 간사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 간사 이채익이 발목을 잡은 결과였다. 이채익은 개인이 아니다. 결국 한국당의 몽니로 과거사법 통과가 불발됐다.

과거사법은 한국당이 국회를 보이콧하던 지난 10월 행안위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어갔다. 행안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가자 법사위가 법안을 잠재우는 행동에 돌입했다. 자유한국당 여상규씨가 위원장을 맡고 있어 논의가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고 여당인 민주당이 열의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난해 연말에 ‘4+1 연대’를 통해 공수처를 비롯한 사법개혁안과 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된 데서 보듯 형제복지원 등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도 ‘4+1 형태’로 통과가 가능한 사안이었다. 결국 민주당 또한 의지가 없었다는 거다. 민주당 뒤에는 정부와 청와대가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의지가 미약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를 자임했다. 촛불이 무엇인가. 구악을 몰아내고 구제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심고 키우는 것이다. 구악 중에 구악이 국가 폭력 사건이고 인권침해 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선감학원 등 인권유린 사건과 한국전쟁 때 민간 학살 사건, 여순 학살사건 보다 더 큰 인권 유린 사건이 어디 있는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간첩 조작사건 등의 국가폭력 사건, 여순 학살사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사건은 진상규명이 완전히 멈춰 있다. 촛불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정부라면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사건의 진상규명에 목숨 걸어야 한다. 인권 유린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 촛불혁명 계승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20대 국회가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20대 국회의원들과 통합당, 민주당 등 거대정당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1만 5000건이 넘는 민생법률안이 국회에서 잠잔다는 뉴스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국가폭력, 인권유린 사건 진상규명법은 손도 대지 못하고 4년의 세월이 모두 흘러갔다. 20대 국회는 민생 법안도 국가폭력 진상규명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국회로 끝을 맺을 운명인가.

만약 국회가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국가폭력 사건 진상규명 법률을 끝내 거부하고 문을 닫게 되면 두고두고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국회로 남을 것이다. 통합당은 물론 민주당도 역사적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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