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통합당을 두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다. 이 말이 정치인들이나 정치평론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장삼이사(張三李四) 보통사람들이 하는 말인바,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는 등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나면 무언가 다 잡고 당 체제나 분위기가 새로워져야하는데 아직도 당권싸움으로 비쳐지고 있는 게 ‘참으로 한심하다’는 속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 말처럼 지난 4.15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부․여당이 잘해서 전폭 지지해준 게 아니라 제1야당이 너무 못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총선이 끝난지도 3주가 됐지만 미래통합당은 집안 싸움하느라 혼란스럽기만 하다. 누구 하나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 없이 고작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게 전부다. 현재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심재철 원내대표는 선거에서 낙선했으니 말발이 먹혀들지 않고 당지도부에서도 낙선자가 많아 운신의 폭이 좁은 관계로 제대로 당을 추스르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 또 21대 의원직을 계속 이어가는 의원 중에서 중진들은 각자도생하면서 자기위주로 말을 쏟아내고 있으니 마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군웅활거 모습을 보는 듯하다. 

당내외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지난 선거 공천과정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중진들이 친정인 통합당의 복당을 꿈꾸며 뒤죽박죽 행보를 보이고 있는 통합당 지도부를 공격하면서 당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홍준표 전 대표이다. 홍 전 대표는 김종인 예비 비대위원장에 대해 연일 인신공격에 가까운 포문을 열고 있는바, 두 사람의 과거 악연이 계속되는 듯하다.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당 의원과 당선자 연석회의에서 비대위원장으로 낙점 받았으나 임기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수락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현 야권 정치인사 중에서 홍 전 대표가 차기 대선 지지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가동될 경우 대선 후보는 고사하고라도 통합당 입당조차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통합당 지도부 분위기가 안정화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홍 전 대표는 김 비대위원장 내정자에 대한 공격은 더 거세지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를 반대하는 명분은 김종인 체제가 들어오면 ‘황(교안) 체제’보다 더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지금 통합당이 안고 있는 계파분열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국 비대위를 이끄는 김 위원장의 오만과 독선이 당의 원심력을 더 키울 것임을 우려한다는 게 홍 전 대표가 보는 예상인 것이다.  

홍 전 대표가 판단하고 있는 전조처럼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다. 정치인이면서 경제전문가로서 정평이 나 있다. 그에게 붙여진 별호들이 여러 가지지만 거대 정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대위를 이끌면서 정상적인 정당으로 탈바꿈시켜놓았던 관계로 직업을 ‘비대위원장’이라 해도 잘못된 게 아닐성싶다. 어쨌든 뛰어난 정치 감각이나 개혁성에서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노령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로 대접받는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내정자는 아킬레스건이 많음에도 용케도 난관을 잘도 빠져나왔다.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핵심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또 거대정당 양당을 오가면서 5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재선이 힘든 비례의원 5선은 특별나다. 또 3선 의원으로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있던 시절에는 민자당과 관련되긴 했지만 뇌물죄로 입건돼 1993년 당선무효형을 받았으나,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돼 정치 재기에 성공했다. 그 후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지내면서 당을 일으켜 세웠고, 이번에는 미래통합당의 ‘구원투수’로 나설지는 김종인 내정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제1야당 문제는 현재 암중투쟁하고 있는 김종인이나 홍준표가 아니다. 통합당이 과연 총선 참패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하는 문제로 현재와 앞날 문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곧 물러나는 심재철 지도부에서는 조기 당 재건을 위해 당헌상 대표 권한대행을 갖는 새 원내대표를 오는 8일 선출할 계획이다. 대표권한대행인 차기 원내대표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김종인 내정자를 비대위원장을 임명할지 향후 당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이다. 

통합당 속사정이 복잡한 것은 대다수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일 테지만 국민은 그 사정을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통합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극복해 내야할 과제인 것이다. 지금 통합당 모습을 두고 소속의원들조차 “통합당이 왜 이렇게 망가졌고, 국민밉상이 됐나”라고 자조하지만 자초한 일들이 아니겠는가. 끊임없는 내분 속에서 당내 통합조차 안 되는 현실이니 지난주 정당여론조차에서 10%대로 곤두박질친 것도 다 이유가 있어보인다. 국민들에게 밉상 보여 진짜 폐가멸문당하기 전에 통합당은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고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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