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미래통합당이 ‘꼼수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정의당의 미래는 희망적이었다. 21대 총선을 통해 교섭단체 구성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반쪽에 불과하지만 헌정사상 처음으로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됐을 뿐만 아니라, 그 지난했던 투쟁 과정의 주역도 바로 정의당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극단적 진영 대결에 신물이 난 국민의 분노가 워낙 컸다. 그 분노를 끌어안을 수 있는 정당도 정의당이 첫 손에 꼽혔던 것도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창당되더니 그 맞불로 민주당까지 꼼수로 대응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 지역구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선거에서도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라는 거대 양당의 극단적 진영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연동형 비례제가 이처럼 무참하게 뒤틀리고 짓밟힐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제의 수혜는커녕 자칫 거대 양당의 꼼수 경쟁 앞에서 생존을 걱정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정의당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정당 득표율 9.67%를 기록했다.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5석에 불과하지만 거대 양당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정당 득표율도 지난 총선(7.23%)보다 조금 더 높았다. 거대 양당의 역대급 극단적 진영 대결 앞에서 ‘제3지대정치’가 초토화 되고 만 현실을 감안할 때 정의당의 성과는 미흡하지만 그럼에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다. 그 어떤 꼼수로 짓뭉개도 붕괴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힘, 정의당의 저력은 다른 선거용 뜨내기 정당들과는 결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한국정치 70여년 역사에서 진보정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잇고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친일기득권 세력의 반공이데올로기와 군사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적 탄압에 맞서 싸워온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의 뒷골목에서 소외되고 눈물짓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한국 진보정치의 근간을 지켜온 정당이다. 권력이 짓밟고 자본이 목을 졸라도 더 굳세게 일어나서 이 땅의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참으로 자랑스런 정당이다. 여전히 기득권 세력이 판치고 있는 오늘의 한국정치에서 이런 진보정당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더는 버틸 수 없다. 아무리 역사성과 정통성이 있더라도 이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언제까지 ‘군소정당’으로 불리며 거대 양당의 주변부를 맴돌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21대 총선이 최적의 타이밍이 될 뻔했다. 그러나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총선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거대 양당의 무한 정쟁과 극단적 진영 대결의 ‘막장 정치’를 걷어내고, 한국정치의 새 판을 짜는 견인차가 돼야 한다. 마침 제1야당인 통합당은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당장은 회복 불능일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도 압승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외에 뭘 잘했는지 딱히 손에 잡히는 게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참으로 ‘야당 복’이 많다는 세간의 얘기가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한국정치, 그것은 두 거대 양당의 진영 대결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좌파, 우파의 싸움이 아니다. 전라도, 경상도 싸움은 더욱 아니다. 70년 이상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기득권세력의 손에서 이제는 국민의 손으로 되돌려 놓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통합당의 몰락은 그 첫 신호탄일 뿐이다. 이런 흐름을 놓친다면 민주당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시대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탐욕과 오만에 찌든 기득권 논리로는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각 국의 정치지형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제3지대정치가 분출하고 있으며, 의석 한 석도 없는 정당에서도 대통령 당선자가 나왔다. 정당정치를 주름잡았던 기득권 양당 정치도 쇠퇴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1대 총선을 통해 기득권 양당 정치가 더 부각됐다. 그러나 공고화의 수순인지, 아니면 해체의 전조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제3지대정치의 몰락과 함께 거대 양당의 한 축인 통합당도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는 거대 양당의 다른 한 축인 민주당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의당이 지금 그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정당은 현실적으로 정의당 밖에 없으며 또 그럴만한 저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의당은 먼저 노동 중심의 가치에서 의제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에 버금가는 다른 강한 고리를 몇 개 더 구축해야 한다. 자칫 강한 메시지 하나는 다른 소중한 가치를 덮어버리기 일쑤다. 이것은 ‘대안정당’으로 가는 길에 결코 장점이 아니다. 과연 무엇이 국민의 일상을 좌우하는지 코로나19사태에서 배워야 한다. 두 번째는 원내정치보다 원외정치의 동력을 살려야 한다. 여성과 청년, 환경과 노동 등 풍부한 미래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정의당이 국회 밖의 대중과 현장에서 손을 잡지 않으면 원내에서도 크게 할 일이 없다. 세 번째는 ‘더 젊고 더 많은 심상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언제까지 노회찬, 심상정으로 이어지는 올드 레퍼토리를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스타를 육성한다는 것은 내부의 ‘기획’과 외부의 ‘기회’가 맞물릴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소용이 없다. 이 와중에서도 정의당은 무려 9.67%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다. 그렇다면 이제 정의당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거의 몰락해버린 ‘제3지대정치의 눈물’에서 그 생생한 교훈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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