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동남구 각원사 뒤 돌탑골 암벽에 조각된 3구의 마애불의 상호(왼쪽)가 개성박물관에 소장된 왕건의 청동상 얼굴과 비슷해 이를 조각한 석수장이 이미 알려진 왕건상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 뒤 돌탑골 암벽에 조각된 3구의 마애불의 상호(왼쪽)가 개성박물관에 소장된 왕건의 청동상 얼굴과 비슷해 이를 조각한 석수장이 이미 알려진 왕건상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개성박물관 왕건 청동상 얼굴 닮아… 30년 전 조각 밝혀

태조 왕건 주둔 후삼국 통일 ‘왕자산’ 태조묘 등 찾아야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 뒤 돌탑골 암벽에 조각된 3구의 마애불은 그동안 조성 시기 등이 불명이었다. 그러나 불기 2564년 사월초파일을 맞아 한국역사문화연구회 답사반(반장 이재준 고문, 전 충청북도 문화재 위원)은 마애불이 30년 전 각원사 주지 서대원(徐大圓) 큰스님의 발원으로 천안에서 유명했던 석수장 김모씨(지금은 작고) 의해 조각된 것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상호가 개성박물관에 소장된 왕건의 청동상 얼굴과 비슷하여 석수장이 이미 알려진 왕건상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했다.

태조산 마애불은 중앙에 1구의 보살좌상과 좌우 입구에 2구의 신장상(神將像)으로 조각돼 있으며 신장들은 가운데 보살을 호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보살상의 크기는 높이 2m40㎝나 되며 신장상도 비슷한 크기이다. 이 고문은 보살상에 대해 “‘비록 현대 작이지만 단판의 복련 연화자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상호는 왕건상과 같이 턱이 살찌고 원만하며 미소를 머금고 있어 고식을 충분히 따랐다”고 말했다.

이 불상은 황제들이 쓰는 통천관(通天冠)과 비슷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중앙에 화불(化佛)을 배치해 관음보살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머리 뒤에는 원형의 두광을 돌렸는데 원을 따라 맨 위에까지 화염문으로 조각해 더욱 화려하게 돋보인다.

또 왼손은 오른발 무릎에 얹고 있으며 오른손은 오른쪽 어깨 가까이에서 손가락을 오므리고 있는 특이한 수인(手印)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에는 군의 띠가 있으며 아래 발까지 ‘u’자형으로 내려왔다.

양팔에 걸쳐있는 법의는 오른쪽은 접은 형태이며 왼쪽은 양 발아래 연화좌와 맞닿게 조식했다. 이 고문은 “유려한 조각 수법과 당당한 어깨, 원만한 상호 등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후조각 수법을 따른 것”이라고 전제하며 “조각을 한 석수장의 불상에 대한 높은 안목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 뒤 돌탑골 암벽에 조각된 2구의 신장상(神將像)은 가운데 보살을 호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보살상의 크기는 높이 2m40㎝나 되며 신장상도 비슷한 크기이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 뒤 돌탑골 암벽에 조각된 2구의 신장상(神將像)은 가운데 보살을 호위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보살상의 크기는 높이 2m40㎝나 되며 신장상도 비슷한 크기이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이 고문은 해당 불상과 가까운 암반에 조각돼 있는 2구의 신장상은 하나는 삼지창을, 하나는 칼을 빼들고 있으며 가운데 관음보살을 시위하는 형태라고 밝혔다.

또한 이 고문은 “비록 30년 전의 조각이지만 고려 태조왕건의 역사가 어린 태조산 정상 암벽에 조각돼 있고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해 등산로 등을 정비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왕건 태조묘(太祖廟)와 10만 군사를 훈련했다는 고정(鼓庭) 등 유적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답사반은 성거면 천흥리에 있는 고려 개국과 관련한 대찰 터 천흥사지(天興寺址)도 답사, 현지에서 신라 평기와 등을 확인, 천흥사의 창건이 고려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천안 태조산에 자리한 각원사를 찾았다. 각원사에 모신 청동대불은 높이 15m에 무게 60톤으로 동양 최대의 청동 아미타불 좌상이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천안 태조산에 자리한 각원사를 찾았다. 각원사에 모신 청동대불은 높이 15m에 무게 60톤으로 동양 최대의 청동 아미타불 좌상이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왕건과 천안도독부

고려 초 태조 왕건의 ‘천안도독부’ 설치는 후백제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천안은 하늘 아래에서 제일 편안하다는 ‘천하대안(天下大安)’의 줄인 말이다. ‘다섯 마리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을 가졌다’는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地勢)라는 풍수지리적 배경도 이 지역을 중요시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제1권 태조 경인 13(930)년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가을 8월에 대목군(大木郡)에 행차하여 동서두솔(東西兜率)을 합쳐서 천안부(天安府)라 하고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대승(大丞) 제궁(弟弓)을 사(使)로, 원보(元甫) 엄식(嚴式)을 부사(副使)로 삼았다(秋八月 幸大木郡 合東西兜率 爲天安府 置都督 以大丞弟弓 爲使 元甫嚴式 爲副使).”

고려 태조 왕건은 천안도독부를 세우기 전 술사 예방(倪方)의 말을 귀담아 듣고 왕자산에 올라가서 지세를 살핀 후에 성을 쌓고 결심을 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각원사 뒷산인 일명 왕자산성에 얽힌 유래다. 왕자산성은 흡사 왕자(王字)를 닮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인근 태조산에서 바라보면 정말 왕(王)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왕자산성 밑에는 고려시대 왕건을 모신 태조묘(太祖廟)와 고정(鼓庭, 북을 치며 군사를 훈련하는 넓은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기록만 전하고 있다.


 

천안 성거면 천흥리에 있는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천흥사지 5층석탑. 천흥사지 5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54호로 지정됐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9호)가 남아 있으며, 동종(銅鐘)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천안 성거면 천흥리에 있는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천흥사지 5층석탑. 천흥사지 5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54호로 지정됐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9호)가 남아 있으며, 동종(銅鐘)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사진=이태교 기자) ⓒ천지일보 2020.4.29

왕건은 누구인가

왕건은 877년에 송악(松岳, 지금의 개경) 출신이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부하가 되었다. 그러나 궁예가 왕도를 잃자 918년에 홍유,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세웠다.

제위에 오른 왕건은 신라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후백제와는 대립관계였다. 이후 후백제에게는 계속 밀리다 고창성, 보은 매곡성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후삼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935년에는 신라를 합병했고 그 이듬해 후백제를 평정,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다.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천수(天授)’라는 연호를 쓴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밝히고 청천강 하류에서 영흥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제일 중요한 고구려 계승의지로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왕건은 거란에 의해 핍박받던 발해 유민들을 동포로 맞아들이고 거란과는 외교를 끊었다.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의 토호 세력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각 지방의 힘 있는 자들에게 왕씨 성을 내렸다. 불교를 적극 장려했고 후대의 임금들에게 덕치의 요목인 ‘훈요 10조’를 남기기도 했다.

충남 연산 개태사(開泰寺)는 고려 초 창건된 국찰(國刹)로 왕건의 진영을 모신 대찰이었으며 천안 성거읍에 있던 천흥사(天興寺)는 후삼국통일의 기념비적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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