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가불(假拂)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정한 날짜 전에 지불한 봉급, 또는 그렇게 지불하여 주는 봉급’이라고 나온다. 봉급 이외에도 나중에 받을 것을 먼저 받아서 쓰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가불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잘 들을 수 없는 단어가 돼 버렸다. 미리 쓰고 지불하는 형태의 카드로 대체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는 분의 자제가 어려운 입사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동안 고생을 했으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다. 대학에 다니던 동생이 부러웠는지 언니에게 행복을 가불해서 쓰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다고 들었다.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행복 가불’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어서 가끔 떠 올려 보곤 한다. 가불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행복 가불’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행복 가불’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사무실을 이사했다. 주차할 차는 두 대인데 주차자리는 한 자리밖에 없어서 고민이 됐다. 몇 개월 안 있어 우연히 다른 곳에 주차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사무실에 차를 대던 분까지 이전을 하게 돼 지금은 아주 가끔 주차자리를 쓸 뿐이다. 그로 인해 마음이 무겁고 불행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이 바로 불행을 가불해 쓰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 지금 당장 행복, 불행과 관계가 적어 보인다. 미래에 어찌될지 모른다면 우선 행복한 것이 이익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들게 산 어른이 많다.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하면 서운할 수도 있지만 그 상관관계는 미미한 것 같다. 더구나 그렇게 살다가 몸이라도 아프면 본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힘들게 된다. 적어도 불행을 가불하는 일은 적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가끔 딸들이 놀러가자고 하면 돈 걱정을 먼저 한다. 훗날을 생각하지 말고 빚을 내서라도 놀러 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리거나 무리를 하면 지금도 결코 행복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몇 년 전, 언니들이 북해도 여행제안을 해 와서 망설였던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여행일정을 빼려니 여러 가지로 곤란했지만 다행히 일정을 조정해서 다녀왔다. 여행이 즐거웠고 행복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여행 이후, 큰 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국내 여행을 세 자매가 한 일은 있었지만 아프기 시작한 이후에 해외여행은 불가능했다. 

인생을 살면서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북해도 여행이다. 기회라는 것은 자주 올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행복 가불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되니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권리이기 전에 의무이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행복, 가불을 해서라도 많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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