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의료계 반발로 시범사업에만 머물러온 원격 의료가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의료 현장에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코로나19 전담 병원에서는 의료진 감염 최소화를 위해 대면 진료가 아닌 화상진료나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상담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무산됐던 원격 진료가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로 편의성과 실효성을 일단 확인한 셈이다. 

원격의료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그때는 강북삼성병원 등 일부 병원에 국한했었다. 이번에는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정부가 2월 24일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한 이후 4월 12일까지 약 50여일간 전국 3072개 의료기관에서는 총 10만 3998건의 전화 처방 및 처방이 이뤄졌다. 진료 금액으로 따지면 12억 8812만원 수준이다. 원격 진료로 인한 오진이나 의료 사고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환자들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에서 총 7만여개의 병원 중 참여한 병원은 3072곳으로 약 4%에 그쳤다. 참여한 병의원 10곳 중 약 6곳은 동네 의원 급이다. 총 전화상담 횟수의 57.6%(5만 9944건)가 동네 의원 급에서 이뤄졌으며 2차 병원 등 종합병원은 19.7%(2만 522건), 3차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은 2.7%(2858건)에 그쳤다. 원격진료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원격진료는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있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낮아진다고 한다. 또한 오진이 발생할 경우 의료과실인지 장비결함인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사이버해킹에 따른 개인 의료정보 누출도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학적 안전성과 동네병원의 타격 등의 이유로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반발로 원격 진료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은 10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주요국가가 원격 진료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만도 지난해 기준 305억달러에 달하고 연평균 성장률도 14.7%나 된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 2014년에 이미 6건 중 1건을 원격으로 진료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커졌다.

4차 산업혁명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중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알리페이와 바이두 등 11개 업체가 참여해 ‘신종 코로나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을 구축했다. 중국 원격의료 플랫폼인 ‘핑안굿닥터’를 이용한 환자는 11억 1000만명에 달한다. 일본에서도 네이버의 라인 메신저를 통해 전 국민이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의사와의 원격 상담 창구를 개설했고, 크루즈선 승객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진료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비대면 원격 진료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해줬다. 감염병 대유행이 또 닥쳐올 것을 감안하면 원격 진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경제 위기 극복과 고용 안정을 위해서도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중요하다. 우리도 과감한 정책의 발상 전환으로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 철벽 규제를 뚫고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혁신으로 원격의료를 시행해야 한다.

최근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코로나19로 원격진료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본격 추진 의사를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향후 전염병 발생 등에 대한 대응 역량을 키우고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원격의료 시장 내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원격의료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세상은 ‘비대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가 뛰어난 정보통신기술을 갖추고도 원격의료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지 못하면 갈라파고스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의료계를 설득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해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의료계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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