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살문 너머로 사직단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종묘와 반대로 음적인 원리… 보물 177호 사직단 정문 남아있어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사극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전하, 종묘사직이 위태롭사옵니다.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왕에게 친히 당부할 수 있는 사항이 되는 즉, 나라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곳이 종묘와 사직이다.

“종묘와 사직은 보존하옵소서”라는 말은 왕이 나라의 근본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거나 선조의 유지를 받들지 않을 때, 왕의 마음 중심을 바로 잡고 나라 안팎을 걱정하던 신하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음양조화의 원칙에 따르면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 놓은 종묘는 남성과 하늘을 상징해 양적인 원리를 대표한다.

반면 사직단은 여성을 뜻하고 음적인 원리에 해당된다.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인 사직단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에도 설치됐으나, 서울에 있는 사직단의 규모가 가장 크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사직단은 1395년(태조 4)에 건립됐다.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고려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를,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21호로 지정된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데 담장마다 홍살문(사진)이 설치돼 있다. 동쪽에는 사단, 서쪽에는 직단 홍살문이 있으며, 두 단의 모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따라 한 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다. 또한 두 단의 높이는 약 1m이며, 사직단 총 면적은 9075㎡이다.

▲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 사직단은 사직공원 내에 속해 있다. 사직공원은 18만 8710㎡ 면적을 자랑하는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성역이었던 주변은 일제강점기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실 아래 훼손되기 시작했다. 부지를 분할해 학교를 신설하고, 우회도로를 개설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보물 177호로 지정된 사직단 정문은 1962년의 도로확장공사를 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14m 가량 뒤쪽으로 밀려났다. 위치가 이동되면서 인도를 끼고 도로와의 간격이 넓어지긴 했으나, 과거 성역이었다고 보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컸다. 또한 사직단 정문 측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차가 달리는 구간인지라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사직단에서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ㆍ선농ㆍ선잠ㆍ우단을 제사지내는 중사(中祀)와 그 밖에 기곡제(祈穀祭),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했다. 또한 사직서(社稷署)가 생겨 제사의 수발을 맡았으며, 나라에 큰 일이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 등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현재 사직공원 내에는 종로도서관ㆍ시립어린이도서관을 비롯해 활터인 황학정과 단군성전 등이 있다. 이이ㆍ신사임당의 동상 아래 흙바닥에서는 노인들이 게이트볼 연습을 할 수 있다.

▲ 사직단 정문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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