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용부 전통연 작가가 이순신 장군의 신호연을 미니어처로 재현해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해운 성용부 전통 연 작가
연에 대한 열정 청년 못지않아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해운(海雲) 성용부(74) 전통 연 작가의 교육관에 들어서면 천장에 화려한 중국식 연들로 가득하다. 그는 “얼마 전, 한국 고유의 전통연을 보관하려고 다 뗀 상태”라며 중국연밖에 남은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전통연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유럽 등 해외 연들도 직접 연구하고 제작하는 등 연에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위치한 종합운동장 내 전통공예체험교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교육관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32개의 신호연들을 모아 미니어처로 만든 컬렉션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에게 작전수행과 명령을 전하기 위해 연에 신호·암호를 그린 연을 하늘 높이 띄었다. 돌쪽 바지게연은 ‘군수품 조달’, 홍의 당가리연은 ‘남쪽 방향으로 공격하라’ 등 32개의 연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

성 작가는 신호연을 재현하기 위해 <난중일기> 등 각종 사료를 찾고 연구했다. 그 결과 신호연에 쓰인 색의 의미를 발견했다.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각각 표현한 것이다.

“옛날 임진왜란 때 왜가 쳐들어오면 삼도 수군통제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이 흩어져 있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연을 날렸습니다. 연의 문양에 따라 내용이 달랐는데 삼봉산의 문양의 있는 연인 삼봉산연을 날리면 ‘모든 군사들은 삼봉산에 보여라’는 신호였습니다.”

▲ 이순신 장군이 만든 신호연 가운데 ‘돌쪽 바지게연’. 연은 ‘병기·병참·군수품을 조달하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붓 터치가 정교한 삼봉산연은 지금도 통영을 대표하는 연으로 알려졌다. 성 작가는 “일반적으로 ‘연은 종이로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신호연은 천으로 만들어졌다”며 “재현한 신호연도 천을 재단·색칠한 후 옻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마음의 문이 눈이라고 했던가. 어릴 적부터 오직 연에 열정을 쏟아부은 연유인지 성 작가는 일흔을 넘겼지만 눈망울이 어린아이만큼 초롱초롱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연과 관련되지 않는 이야기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성 작가가 생각하는 연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어렸을 적엔 하늘 높이 나는 연이 좋았겠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연을 띄우는 자체만으로도 운동이 되니까 좋다고 할까요. 허허허.”

성 작가는 연 날리기로 운동이 된단다. 얼레를 감고 풀 때 온몸과 근육이 함께 움직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땅을 밟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대로 하늘에 있는 연이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연 날리는 자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연도 그대로 사람을 따른다. 오랫동안 연을 띄울 경우 사람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과 연이 서로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 고유의 전통연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패연’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 봤을 방패연은 사실 일본에서 건너왔다. 그는 “일본어로 연을 ‘타코(たこ)’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방패연”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에서 연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삼국시대 신라 진덕여왕(647)이 즉위했을 무렵이다. 당시 비단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큰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진덕여왕은 더욱 두려워했다. 김유신 장군은 여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허수아비에 불을 붙여 하늘 높이 올렸다.

“삼국시대엔 풍연이라고 불렀고,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는 지연이라고 불렀죠. 우리나라 연은 바로 ‘지연’입니다. 연을 만드는 사람도 지연장이라고 일컫죠.”

‘방패’는 무기를 막는 것으로 구멍이 없고 이를 모델 삼은 방패연도 네모반듯하며 꽉 막힌 연이다. 반면 ‘지연’은 가운데 구멍이 있다.

그의 연 사랑은 교육관 곳곳에 걸린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과 태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연을 띄운 성 작가의 모습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연을 예찬하는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통연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연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연의 수요가 감소하는 셈이죠. 연의 역사가 우리보다 700년 앞선 중국은 연 마을을 만들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 그저 아쉬울 따름이지요.”

성 작가의 바람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을 다시 날리는 것이다. 연을 단순히 날리는 것이 아니라 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진들의 놀라운 지혜를 얻는 게 그의 뜻이다.

“연을 지탱하는 달은 인체와 똑같습니다. 연 제일 위에 위치한 머릿달은 머리, 가운데 허릿달은 허리, 오른쪽은 오른팔, 왼쪽은 왼팔 역할을 각각 담당한다. 기둥살은 심장 부분으로 좌우 중심을 맡고 있지요. 이러한 이유로 외국과 달리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연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고 연싸움도 가능한 거죠.”

성 작가는 연을 알리기 위해 교육관에서 개인 또는 단체별로 연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하늘에 연으로 수놓는 그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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