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언론의 신뢰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19와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신뢰하는 언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유튜브의 부정선거 기사 내용은 계속되고, 코로나19 위기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다. 언론에 회자되는 코로나 대책기금은 조(兆) 단위를 넘어 몇 십조 단위로 회자된다. 그 수치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몇 십조가 아니라, 몇 백 조(兆)정도여야 국민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물론 그 현상은 정상적이 아니다. 그 많은 언론이 몇 개만이라도 본업에 충실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언론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감시 기능을 외면한 채, 정부의 나팔수 역할만 열심히 한다. 그 결과 언론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를 선택하는 시대가 왔다.

미디어오늘은 <코로나19와 독일 공영방송의 ‘존재감’ 그리고 수신료>라는 기사를 올렸다. 시청률이 30.5%까지 올라간다. 코로나19 위기 때 뉴스·정보·교양이 그 만큼 돋보였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저녁 8시 뉴스 타게스샤우(tagesschau)는 요즘 시청률 1위를 도맡고 있다. 그 결과는 시청자들이 공영언론에 대한 신뢰를 준 덕분이다.

국내의 공영언론은 셈할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언론은 자유와 독립성은 고사하고, 정부의 나팔수 역할하기에 여념이 없다. 공영언론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헌법 정신을 숙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 될수록 각 제도의 역할이 돋보이게 되고, 전문가가 각광을 받는다. 그 전문 영역은 언론 기능에 충실할 때 생긴다.

자유주의 국가 언론의 주요 기능이 환경의 감시, 사회의 연계, 문화의 전승 그리고 오락 등으로 꼽는다. 자유주의 언론은 시장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시장에서 자기검증원리(self righting principle)를 작동시킨다. 각 기사는 정확한 팩트, 그리고 독립성,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 등을 덕목으로 한다. 물론 기계적 공정성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언론의 큰 덕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 언론은 선전, 선동, 조직자의 기능을 앞세운다. 사회주의 국가는 무오류의 사회이다. 그 사회를 낙원의 사회로 간주한다. 이들에게 사고, 사건 기사가 많을 이유가 없다. 사회 엘리트를 위한 선전, 선동이 언론의 주요 기능이다.

정부 조직도에 보면 사회주의 국가 조직도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조직도와는 많이 다르다. 둘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고, 양자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은 헌법 정신에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이후 9번의 헌법 개정을 했지만, 언론의 자유 가치는 지금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기자도 헌법 정신에 충실할 필요가 있게 된다.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언론은 사회를 통합하고, 공론장을 확실히 유지해야할 필요를 지니게 된다. 사회의 각 부분은 ‘의존관계’를 형성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할수록 흩어진 개인을 묶어 주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1월 20일부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기면서 사회는 패닉 상태를 경험하게 됐다. 더 진실에 충실한 보도·정보·교양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에 즈음하여 정부·여당은 사회의 위기를 바로 21대 총선과 연결시켰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제 기능을 해줘야 했다. 잘 못하면 정부의 중간평가라는 총선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었다. 송철호 울산시장 부정 선거, 유재수 감찰 무마사건, 조국 가족 비리, 코로나19, 21대 국회의원 선거 등 어느 것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병리가 누적돼 간다.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물고 들어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진실 규명을 외면 한 채, 언론은 정부여당의 선전, 선동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거짓은 점점 산을 이루는 형국이 됐다. 정치 권력은 권위주의를 넘어, 파시즘으로 향하게 된다. 그 관성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코드와 이념은 더욱 강화된다. 성역(聖域)은 사회 곳곳에 창궐하고, 타부(taboo)는 늘어만 간다. 타부를 건드리면 당장 페널티가 날아온다.

사회의 부패는 만연되는데, 언론 기능은 낯설기만 하다.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 사회가 개개인의 눈앞에 전개된다. 사회 내 자유는 점점 고갈되고, 불편함이 늘어난다. 자유를 먹고 사는 기업은 고사상태에 놓이게 된다. 탈원(脫)원전과 주 52시간 노동제, 최저임금제 등은 기업을 꼼짝할 수 없게 된다.

일본 언론은 구독료(20%)로 생존하나, 국내 언론은 대부분 광고로 연명한다. 지역은 주로 정부광고, 협찬에 의존하는 언론이 대부분이었으나 ‘코로나 경영난’으로 기업이 어려우니, 지역 언론은 광고 절벽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신뢰가 떨어진 언론이 누구에게도 탓할 수도 없다.

2017년 신문의 열독률은 17.7%이다. 1996년 85.2%는 꿈의 이야기였다. 국민의 76%가 포털로 기사를 고른다.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언론사의 전재료 대신 광고수익을 배분하기 시작했다. 광고수입은 각 언론사가 쓴 기사의 클릭에 따라 ‘팬 비즈니스’에 따른다. 언론사의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기사로 광고를 물어오는 셈이다. 기자협회보는 머니투데이 남도형 기자(구독자 수, 2만 8710), 코메디닷컴 권순일 기자(1만 4121), 한국경제신문 김현석 기자(1만 3351), KBS 이화진 기자(1만 720) 등 순위가 매겨진다. 수용자 구독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사에 신뢰를 주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개인화가 늘어나면서,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언론사의 신뢰는 기자 개개인으로 책임지는 시대가 왔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각 언론사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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