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불교의 주 예배 존자인 미륵(彌勒)은 ‘자비로운 분’이라는 뜻이다. 자비(慈悲)란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며 고뇌를 제거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불자들은 미륵이 한량없는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민중의 소망을 들어준다고 믿어 왔다.

미륵신앙은 상·하생신앙으로 나눠지며 미래에 나타날 미륵은 하생경에서 설명이 된다. 그러면 미륵은 언제 나타난다고 한 것일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 열반 후 56억 7000만년이 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차례의 설법으로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했다.

한반도에 불교가 도입된 시기는 삼국이 명운을 건 전쟁이 심각하게 진전되는 시기였다. 미륵신앙이 중국(위진 남북조)으로부터 들여져 와 민중의 소망에 영합했기 때문이다.

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은 서라벌에 거대한 미륵 불사(황룡사)를 이루려 했다. 그런데 신라에서는 큰 절을 지을 전문 건축가가 없었다. 고구려, 백제보다 문화적으로 뒤처진 이유였다.

백제는 일찍이 남조 특히 양(梁)나라와 유대를 강화해 문화를 발전시켰다. 양나라의 건축기술 각종 공예기술을 도입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성왕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도 부여를 건설했다.

진흥왕은 위기를 느낀다. 어떻게 하면 선진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해 바다를 통해 중국 양나라와 교류를 한다는 것은 멀고도 위험했다. 백제가 길을 막고 신라 선박이 통과하는 것을 저지했다. 진흥왕은 결국 한강을 개척, 수로로 당시 북제(北齊)의 중심 지역이던 산둥반도를 택했다. 이 시기 진흥왕은 청소년 결사부대인 화랑도를 결성한다. 화랑도를 민중의 고통을 구제해줄 미륵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이들을 아름답게 치장해 민중의 아이돌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용화수에 나타난다고 이들을 ‘용화향도’라고 불렀다. 낭도들은 산천에서 수련하며 바위에 미륵불을 조각하고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자고 선서하기도 했다. 삼국시대 명산 암벽에 미륵불과 맹세가 선각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시기 조각 된 미륵불의 얼굴은 모두 청소년이며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당시 백제인도 경쟁적으로 미륵신앙을 믿었다. 무왕은 익산에 삼탑삼금당(三塔 三金堂, 세 개의 금당과 세 탑) 가람인 동양 최대의 미륵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백제 왕자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는 동서화해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자비심을 가지고 전쟁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미륵의 참 뜻임을 가르치고 있다.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국보로 지정된 서산, 태안 마애불, 사면(四面)에 부처가 조각된 중심 부처들도 미륵이다. 백제 미륵의 얼굴을 보면 모두가 아름답다.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불과 좌우에 조각된 관음 보살상,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가장 뛰어나다.

신라 미륵 화랑도는 결국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민중들의 염원이었던 전쟁 비극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민족을 하나로 묶는 자비를 실천한다. 통일신라는 전국을 다섯 소경(小京)으로 나누고 폐허가 된 가람을 중창하고 민심을 위무하는 민족통합 사업에 주력한 것이다.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사 봉축위원회는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이란 표어를 선정했다. 올해는 사찰마다 연등은 모두 걸었으나 법요식도 하지 못한다.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의 시련 속에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 전 세계가 극심한 혼란과 난국에 빠져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보다는 성급하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빈곤층이 많다. 올 석가탄신일을 맞아 자비와 화합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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