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76조 1항은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천재지변 등의 경제위기에서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한하여 최소한의 명령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를 놓고 볼 때 천재지변 등의 대외적 여건은 충족된다. 다만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지금도 국회는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이기에 그 절차와 조건은 매우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가 문은 열어놓고 있지만 여야 간 협의는 지지부진하다. 추경안 심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당정 간 협의가 원만치 않다보니 여야 간 논의도 속도를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산안 심사는 국회의 몫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결심하면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국회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합당의 소극적 태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다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긴급한’ 재난지원금 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만큼 정치권의 논의는 총선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통합당은 최근의 코로나19사태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절박한 심정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벌써 일주일째 반복되고 있는 추경안 논란은 너무 과하다. 정부와 민주당의 오락가락 행보와 일방적 독주에 불편한 심기가 있더라도 이럴수록 국민을 보고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절박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언제까지 야당 탓만 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당정 간의 매끄럽지 못한 조율이나 민주당의 입장 번복, 그리고 고소득층의 자발적 기부운동 등은 문제가 적지 않다. 법과 원칙으로 풀어야 할 긴급재난지원금을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특정 계층의 기부운동으로 대치하려는 시도는 그 취지와는 달리 성숙하지 못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더는 시간이 없다. 어떤 방식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 문제까지 과도한 정쟁이나 여야 간 줄다리기로 이어진다면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도저히 합의할 상황이 아니라면 결국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4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달 15일까지 합의를 달라는 것은 이미 긴급재정명령권 검토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 후에는 21대 국회 개원 준비로 시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와대는 국회 합의를 거듭 압박하면서 동시에 긴급재정명령권 발동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20대 국회에서 최소한의 ‘유종의 미’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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