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해 10월 28일 자정 무렵 세종시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났다. 만취 운전자가 파란 불을 믿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고등학생을 치어 죽게 만들었다. 혈중 알콜 농도가 무려 0.175%였다. 지난 20일 대전지법 이정훈 판사는 가해자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솜방망이 판결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트릴까 심히 우려된다.

우리 사회에는 ‘솜방망이’가 많다. 솜방망이 법률에 솜방망이 수사, 솜방망이 판결, 솜방망이 규정이 있다. 이들 솜방망이 4종 세트 못지않게 힘이 센 ‘솜방망이 관행’이 있다. n번방 성착취 범죄 역시 법률도 규정도 수사도 판결도 모두 솜방망이다. n번방 문제와 음주운전 사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솜방망이 법률과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 부정부패 문제도 생명안전 문제도 공무원의 직무유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8년 12월 윤창호법이 제정돼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형량이 높아졌지만 윤창호군의 친구들이 법안을 만들 때 국회에서 통과를 염두에 두다 보니 강력한 처벌규정을 담은 원안을 만들지 못했다. 문제 있는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으로 법률이 만들어진 탓에 음주운전을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1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부상을 입히는 경우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3000만원의 벌금’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윤창호법은 사망사고를 낸 경우 원안은 ‘징역 5년 이상’이었는데 ‘3년 이상 징역’으로 입법이 됐다. 국회의원들의 안전불감증이 반영된 것이다. 이유로 내건 건 다른 법률과 형평성 문제였다. 이건 핑계였고 국회의원들이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사고를 살인행위로 보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최저 형량을 5년에서 3년으로 낮춘 건 중대한 문제가 있다. 3년은 보통 집행유예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년으로 선고됐다면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힘든 형량이다. 법정 최저 형량이 3년인가, 5년인가 하는 문제는 실형을 사는가, 살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은 큰 차이가 있다.

돈과 권력 있는 사람이 변호사 힘센 사람 쓰고 전관예우 덕 보고 어느 국회의원 아들처럼 돈 많이 주고 합의까지 하면 집행유예 받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런 점을 생각할 할 때 음주운전에 의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최소 형량을 적어도 7년, 가능하면 10년으로 높여야 한다. 형량이 낮은 탓에 음주운전이 흔한 일이 됐다.

국회에서 법정 최저 형량을 3년으로 고집한 건 자신들 또는 자신들의 가족, 자신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경우를 대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윤창호법 원안은 법률적 검토를 거쳐 만든 법률안이었다. 윤창호법 원안의 처벌 규정을 낮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도 윤창호법 원안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윤창호법 원안이 대폭 후퇴한 것은 오로지 국회의원들의 안전불감증과 제 식구 감싸기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는 코로나 정국에서 음주운전이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 1월에서 3월 사이 음주운전 사고 통계를 보면 앞의 해 같은 기간에 비해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6.8% 증가했고 음주운전 사고는 24.4%나 증가했다. 단속이 느슨하다고 판단하고 음주운전을 이전보다 더 많이 한다는 건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왜 생각이 바뀌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형량이 낮은 데다 솜방망이 수사에 솜방망이 판결을 해왔기 때문이다.

법률 강화와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이 나의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고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기는 것이다. 가정과 일터, 공교육 기관은 물론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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