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고구려 왕 중 가장 위대한 영주로 꼽히고 있는 광개토대왕. 북으로는 거란과 연(燕)을 제압하여 고구려군의 강성함을 과시했다. 또 동부여(東夫餘)를 정벌, 64성을 공파함으로써 동부여 넓은 땅도 고구려 판도 안에 들게 했다. 요동성을 침입한 연왕 모용희의 군대를 대파하는 등 승리를 거듭했다.

남으로는 백제, 신라를 공격해 제후국으로 삼은 영웅이었다. 재위시의 칭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 ‘영락(永樂)’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연호이다. 대왕은 천손의 후예인 고구려를 영원한 낙토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인가.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대왕은 즉위 16년 407AD 2월에 국내성 궁궐을 수축하고 수리했다고 기록된다. 당시의 국력을 상징하듯 이 시기 건축물은 가장 규모가 컷을 것으로 상정된다. 국내성 왕궁지나 호태왕릉이라고 알려진 왕릉 주변에서 수습되었다는 와당을 보면 크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고구려 대 용문와당 앞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4.22
고구려 대 용문와당 앞면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4.22

호태왕릉은 지안 통구평야 동쪽 용산(龍山) 기슭에 있으며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여기 소개하는 용문 와당은 능 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름이 22㎝가 넘는 큰 와당이다. 당시 지붕의 서까래가 얼마나 컸는가를 이 와당은 증거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고구려 용문가운데 가장 완벽한 구성미를 지니고 있다. 이마의 뿔은 5개이며 위로 치켜든 눈썹도 산(山) 모양으로 양쪽 4개씩이다. 눈은 앞으로 툭 불거져 나왔는데 콧잔등에는 주름이 4개로 표현되어 있다. 코는 들창코로 콧구멍이 크게 표현됐다.

입은 양 눈 밑까지 벌려져 있으며 이는 양옆에 날카로운 송곳니 2개 앞니는 5개로 표현되어 있다. 아래 이는 4개, 작은 송곳니가 2개다. 외구에는 1조의 원형 선문대에 연주문대를 돌려 장식성을 가미하고 있다. 고구려 와당에 연주문대를 돌린 것은 흔하지 않다.

주연은 무늬가 없는 소문대다. 색깔은 적색이며 모래가 많지 않은 경질. 경 22.5㎝, 눈 3.5㎝, 두께 4.5㎝.

고구려 대 용문와당 뒷면 ⓒ천지일보 2020.4.22
고구려 대 용문와당 뒷면 ⓒ천지일보 20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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