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코로나19 사태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한국의 방역역량과 의료 시스템, 경제·문화를 재조명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우한처럼 극단적인 봉쇄를 하지 않고도 대구, 경북에서 폭증한 감염자를 뛰어난 의료기술과 투명한 환자 동선과 접촉자 공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이겨낸 민주적 방식의 방역을 조명했다. 미국의 언론은 “한국에서 대부분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걸 원치 않고, 개인의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는 문화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가 코로나19 대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실었다. 한국인 특유의 ‘폐 끼치지 않으려는 정서’를 잘 표현한 보도다.

우리가 그동안 맹목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동경했던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의 문화와 마천루의 실상이 후진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오히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헬조선이라고 스스로 자학하던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실감하게 됐다. 물과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져 우린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살아왔다. 밀레니얼 세대가 30~40대가 되어 사회의 중심축을 이룰 때 시민의식이 실종된 사태를 경험할 거라고 걱정하던 게 기우였다. 이번에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단합하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경험했다.

15년 전 외국으로는 미국을 처음 방문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온수 풀이 있는 놀라움에 들뜬 기분도 1주일 만에 사라졌다. 마트와 가게가 멀어 1주일분 먹거리를 사다 놔야 하고, 외식 한 번 하려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고, 바다 구경하려면 차로 6시간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슬리퍼 신고 걸어 나가 외식하고, 맥주 한잔 마실 수 있고 차를 타고 30분만 가도 매번 다른 풍경을 만나는 한국이 좋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많은 나라, 많은 도시를 다녀봤다. 여행을 위해 잠시 지내다 오는 건 좋지만 치안, 교통, 청결, 시민의식, 준법정신 등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에서 대한민국보다 잘 돼 있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은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배송 시스템은 세계 모든 나라가 신기해할 정도다. 새벽에 집 앞까지 배송되고 문 앞에 며칠을 두어도 물품이 분실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나라는 드물다. 세계 최초로 시작된 드라이브스루, 워킹 스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화장지부터 생필품까지 사재기하는 미국, 일본과 다르게 유일하게 사재기하지 않는 시민의식이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IMF 때 장롱 속의 금을 갖고 나오고,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는 그 넓은 갯벌의 기름을 사람의 힘으로 닦아냈고, 대구, 경북의 확진자가 급증하자 전국의 의료진이 앞다투어 달려갔다. 마스크 5부제에도 불구하고 더 급한 분에게 양보하자며 ‘마스크 안 사기 운동’을 벌이는 국민이다. 강대국의 수많은 침략을 받으면서 민족의 혼과 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온 민족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좁은 국토마저 절반으로 나뉘어 인구도 5천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가 코로나19에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위기에 똘똘 뭉치고 강해지는 민족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며 국격이 한 단계씩 뛰어올랐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됐다. 시민의식으로 뭉친 위대한 국민과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환자를 돌본 의료진,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이 가져온 결과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 국민 스스로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made in germany’ 제품이라면 무조건 신뢰를 보내듯이 ‘made in korea’ 브랜드가 세계를 주름잡는 시대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 곧 국민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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