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피아니스트 조성진 5월8일 신보

‘방랑자(The Wanderer)’로 컴백

슈베르트·베르크·리스트 등 선곡

 

지구를 떠돌며 그가 내린 결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집이다”

 

“음악,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

코로나 인한 온라인 연주회 등

음악의 사명·의미 찾는 조성진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것”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우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지닌 이름은 잊혀도 무방한, 아무 의미 없는 귀속의 수단일 뿐이다.” -‘방랑자들(민음사).’

2019년, 가장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바로 전년도엔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하기도 했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에게 수상을 안겨준 작품명은 ‘방랑자들.’ 책의 모든 이야기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연결된다.

새 앨범 ‘방랑자’로 우리 곁을 찾아온 피아니스트 조성진(26)도 어느 측면에선 이와 엇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집이구나.”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곳곳을 누비는 조성진은 어쩌면 방랑자로서 계속되는 여정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조성진이 느끼는 감정은 자유로움일까 방랑의 고독함일까. 독일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조성진의 마음을 이메일 인터뷰로 들어봤다.

“제가 2012년에 파리로 유학을 갔었는데, 한국에서 살다가 파리로 갔을 때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을 가면 거기가 또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기도 하고. 어디가 진짜 집인지 잘 못 느꼈어요.”

하지만 조성진은 이 같은 과정 속에서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콩쿠르하고, 베를린으로 이사 오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베를린에 1년에 넉 달 정도 있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있는 건 아니라서 항상 돌아다니는 게 제 직업이니까, 연주하는 게. 하지만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인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오면 또 편해서 집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현재 그의 ‘집’인 독일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그는 “베를린에선 굉장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날 기회도 있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적인 것들을 선보일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또 외국인도 많고. 다른 독일 도시와 다르게 활기찬 느낌도 있고. 제 음악적인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 오면 편한 느낌은 있다”고 전했다.

조성진의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의 앨범 커버 이미지. (제공: 유니버설뮤직)
조성진의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의 앨범 커버 이미지. (제공: 유니버설뮤직)

◆신보 ‘방랑자’의 의미는

조성진이 2년 만의 신보로 팬들을 찾는다. 이번 앨범은 유니버설뮤직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발표하는 네 번째 음반으로, 슈베르트의 환상곡 ‘방랑자’를 중심으로 베르크, 리스트의 음악을 담았다. 모든 곡은 조성진이 직접 선곡했다.

조성진이 밝힌 앨범 이름 ‘방랑자(The Wanderer)’의 비밀은 이렇다.

“방랑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슈베르트 방랑자 2악장 때문인데, 그게 방랑자 가곡의 주제를 따와서 ‘방랑자’가 됐어요. 방랑이라는 게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거 같아요.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리스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사람의 삶도 (물론 말년에는 한 곳에 머물렀지만) 여기저기서 살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항상 예술가, 보통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이런 점이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해서 그렇게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 환상곡 ‘방랑자’는 조성진이 신보를 구성하면서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곡이다. 이 곡을 중심으로 소나타 형식의 곡이면서도 악장마다 연결해 한 악장의 소나타로 들리는 공통점을 가진 곡들을 선택한 것이다. 조성진은 이를 ‘상상력’과 ‘진보성’이라고 표현했다.

조성진에 따르면 리스트 역시 방랑자 환상곡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소나타를 ‘악장 간 쉼 없이’ 구성했다. 리스트는 실제 방랑자 환상곡을 좋아해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만들기도 했다.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말한 적 있는 작품이다. 조성진도 이 곡의 연주 테크닉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진짜 어려운 건 따로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것은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것’.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조성진이 강조한 부분은 ‘기술적인 편안함’이었다.

그는 “연주의 어려움을 표 안 내면서 음악이 먼저 들리게 하려면 일단 기술적으로 편해야 하는 거 같다. 제가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지는 게 있었다”며 “그리고 이 곡은 또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곡인데, 악장마다 캐릭터도 다르고. 그런 것도 잘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아티스트’의 책임감을 느끼다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 세계를 누빈지도 어느덧 5년. 조성진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봤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것 같아요. 저도 벌써 한국 나이로는 27살이고….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받침에 ‘ㅂ’이 들어가면 20대 후반이라고. 여덟, 아홉….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껴요.”

아티스트에게 책임감이라면, 결국 자신의 예술로 사람들의 감상을 자극하는 일일 테다. 조성진은 그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장도 대부분 멈춰 섰지만, 라이브 스트리밍 등 온라인 연주가 팬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통로로 주목받고 있다. 조성진도 3월 28일 ‘피아노의 날’을 맞아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 연주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그는 “마티아스 괴르네가 이런(슈베르트 가곡 라이브) 아이디어를 줬다. 저도 5년 만에 처음 이렇게 오래 쉬고 있는데, 괴르네는 커리어가 30년이 넘었는데 30년 만에 처음이란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 상황이 어색하겠나.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 음악가들 중에 ‘워커홀릭’이 많거든요. 저도 약간 마찬가지고.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마침 베를린에 살아서 좋은 기회가 왔죠. 저도 관객 없이 이렇게 라이브 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하는 거처럼 에너지를 느꼈어요.”

아티스트의 책임감을 느끼는 조성진에게는 지난해 9월 아티스트로서 한 차원 도약하는 계기도 있었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의 연주에서 지휘자로도 데뷔한 것이다.

조성진은 “지휘는 한 번 해보았지만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깊이 아직까지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유럽에서 제안이 들어 만약 성사된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면서 “하지만 지휘자로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 제가 할 수 있는 레파토리(피아노 콘체르토)는 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최근 음악의 중요성 더 느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음악의 역할, 혹은 의미로 이어졌다. 다른 때보다 요즘에 음악이나 영화를 더 많이 듣고 보게 된 거 같다는 조성진은 ‘음악은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꼭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이럴 때 음악을 많이 듣잖아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이 꼭 필요하죠. 마찬가지로 영화에도 음악이 없으면 조금 이상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 사태(코로나19) 때문에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일상 생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꼈죠. 레스토랑 가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많이 느꼈어요.”

그렇다면 조성진이 생각할 때 힘든 시기를 극복할 힘을 주는 노래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 같다”며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좋은 거 같다. 저 같은 경우는 피아노 음악 오랜만에 많이 듣고 있고. 특정 곡을 많이 듣고 있지는 않고 연주자 위주로 듣고 있다”고 소개했다.

요새 그가 자주 찾은 연주자는 에밀 길렐스, 예핌 브론프만 등이다. 특히 브론프만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그분 라이브를 작년 말에 처음 들었거든요. 뉴욕필과 베토벤 4번을 했는데 그때 너무 좋아서요. 그 사람 앞에서 피아노도 치는 등 연주자이자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됐죠.”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

전 세계에서 각종 모임이 취소되면서 조성진을 스타로 만들어준 쇼팽 콩쿠르도 애초 예정인 4월에서 9월로 미뤄졌다. 콩쿠르에 출전한 이들은 앞으로 6개월 정도를 더 긴장감 속에서 지내며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성진은 선배이자 우승자로서 이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제가 참가했을 때 바르샤바의 10월은 정말 추웠는데,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하게 입고 가는 걸 추천 드려요. 그리고 저 때는 모든 참가자가 같은 호텔에 있었어요. 거기 쇼팽 콩쿠르 보러오는 관광객이 많아요. 일본인이 많고 프랑스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호텔수용 인원이 2000~3000명 정도예요. 그래서 아침 먹기가 힘들어요. 왜냐면 다들 사진 찍어달라고 하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한테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2,3차 때는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시간 절약을 위해서요.”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2년 만에 우리 곁을 찾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제공: Christoph Köstlin, DG)

◆“평소엔 많이 생각, 무대선 비운다”

조성진은 ‘생각을 많이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무조건적인 연습 대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한 바 있다. ‘미래의 조성진’을 꿈꾸는 이들에겐 조성진의 고민 하나하나가 ‘피와 살’이 될 것이다.

그는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다. 제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거 같다”며 “‘그게 좋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다. 특히 무슨 결정 같은 거 할 때”라고 정리했다.

“사람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는 너무 많이 생각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이 헷갈릴 때가 있고 의구심이 들 때가 있고 그런 거 같아요. 항상 제일 중요한 결정일 때 더 머리를 비우는 게 좋은 거 같고.”

이 같은 지론은 당연히 음악할 때도 적용된다.

조성진은 “음악을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한다. 조금 위험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거 같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갈 때는 생각을 많이 비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음악이 주저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어 “자신감 있게 하려면 생각과 마음을 많이 비우고 자신과 얘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조성진의 한국 공연은 올 7월에 예정돼 있다. 그때까진 ‘집’에서 ‘방랑자’와 함께 자신과 얘기를 하면 될 듯하다. 다가올 공연을 기다리는 팬을 위해 조성진은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7월 한국 공연이 성사되길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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