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옛날 어느 훌륭한 스님 회상(대중이 모인 법회)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치열하게 정진하며 살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스님은 대중을 모두 모아 놓고 자신은 이제 열반에 들 때가 왔노라고 선언합니다. 스승을 잃게 된 수행자들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스승께 간절한 청을 드렸습니다. “스승님 진정 저희들 곁을 떠나셔야 한다면 앞으로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그러자 스승은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을 지적하며 “저 스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 모두가 생사를 해탈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께서 일러준 그 스님은 날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공양간에서 국 끓이는 일이나 하고 지내는 그야말로 뜻밖의 스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스님은 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뛰어나 대중들은 그를 ‘된장국 스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중들은 어이가 없어 다시 여쭈어보았지만 스승의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승이 열반한 뒤에 대중들은 모여서 이 문제를 놓고 며칠을 의논했습니다. 공양간에서 서른 해 동안 국만 끓여 온 무식하고 못생기고 어리숙한 된장국 스님을 선뜻 새 스승으로 받들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은 먼저 이 스님이 스승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해 보기로 합니다. 대중은 된장국 스님이 늘 하는 일 가운데 한 가지 유별난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밤 열 시 잠자는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큰 물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서 숲이 우거진 십여 리 산길을 혼자서 다녀오는 것이 아닌가? 이 알 수 없는 새 스승의 독특한 행동은 국 끓이는 일을 시작하던 서른 해 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스님만의 특별한 수행의 일과였습니다.

대중은 새 스승을 시험할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때는 여름철 어느 날 하늘에는 금방 비라도 쏟아질 듯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날이었습니다. 대중들은 마을에서 사냥꾼들을 여럿이 불러 가장 음침한 길옆에 숨어 있다가 된장국 스님이 나타나면 일시에 화승총을 쏘라고 시키고서 그 숲 속에 숨어 된장국 스님의 반응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된장국 스님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엷은 살얼음판을 밟고 가는 듯하여 길가의 풀벌레 소리마저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슴 앞에 들고 가는 물그릇은 그냥 물이 가득찬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온 법계의 부처님이 함께 하는 불국토요, 중생의 생명이 담긴 생명수였습니다.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총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터졌습니다. 숨어서 지켜보던 대중의 숨이 너나없이 멎는 순간이었죠. 그러나 된장국 스님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계속 가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에게는 그 요란한 총소리가 풀벌레 소리쯤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듯 해 보였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가던 된장국 스님이 가만히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물그릇을 길옆에 있는 바위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더니 두손을 가슴에 얹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놀랐다!” 대중은 비로소 모두 울었습니다. 그들의 울음은 참회의 눈물이자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 버릇없는 시험을 함으로써 탐욕·성냄·어리석음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는 깨어있는 큰 스승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겉모습에만 의지하여 참된 스승을 몰라본 그들의 어두운 눈 또한 말끔히 씻어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진태가 쓴 ‘달을 듣는 강물’이라는 수월스님 일대기에 나옵니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지시겠지만 된장국 스님의 수행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뜻있는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난세를 대비해 쉼 없이 정진하고 대비합니다. 지극히 정성스러우면 정신이 외연 독립합니다. 뜻을 바로 세우고 그 뜻을 지극히 정성스럽게 하는 공부가 있습니다. 된장국 스님의 이야기는 제가 좋아해 공부에 뜻을 둔 이들에게 가장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이 공부가 참 귀해져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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