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지구촌 전역을 휘감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는 과연 언제쯤 멈출까. 지금, 이 순간도 속절없이 병마로부터 희생당하는 인류를 생각하면 먹먹할 따름이다. 그런 가운데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진정국면 내지 소강상태를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모두의 희생이 만들어낸 결과라 하겠지만,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졸라매야 한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어둠의 그림자가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이 내리는 재앙 앞에 우리는 그저 보잘것없는 인생일 뿐이다. 그러니 한없이 겸손하고 낮아지고 사랑해야 하며 무엇보다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러한 때 지나칠 정도로 사람의 생각과 의술과 능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하늘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인생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한 층 더 높은 차원의 생각으로 귀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류에 떠밀려 하늘보다 땅의 생각과 욕심과 아집과 습관에 젖어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러한 난세에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분별하게 해야 할 언론과 기자의 역할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아니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종군기자가 필요한 것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전쟁의 참혹함과 진실 하나하나를 찾아 당대는 물론 후대에 알려야 할 사명을 어쩌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것이 언론이며 기자며 존재 이유다.

시류에 편승해 어용(御用)언론이 가는 길을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히 걷는 언론과 기자들을 보면서 이 사회와 나라와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자극적이고 국민과 정의와 진실과 사실의 편이 아닌 기득권의 편과 오직 내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짓 언론의 홍수에 세상은 혼수상태가 돼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언론과 기자들에 의해 사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사실이 되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그저 이상한 사람이 돼 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세상은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마치 외눈박이가 모여 있는 곳에 두 눈 가진 사람이 있으면 외눈박이가 정상이고 두 눈 가진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이 되는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 어찌 된 것일까.

중세 가톨릭 시대에 천동설은 당시 가톨릭에 있어서는 진리요 교리였다. 이를 부정하면 이단아로 취급받으며 심지어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한 때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진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리인 천동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선 진리고 아니고를 떠나 가톨릭의 권세와 권력과 기득권의 위세 앞에 진실과 진리는 너무나 미약했다. 그런 가운데서 나온 유명한 일화 즉,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한마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교훈과 감동으로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사실과 진실과 진리는 공기가 가득 찬 튜브를 아무리 물속에 쑤셔 넣어도 다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이 어찌할 수 없다는 이치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과 진실과 진리는 언젠간 반드시 드러나고 밝혀진다는 이 엄청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이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자는 시대마다 있었고, 오늘날도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기자는 이 땅의 역사와 현실뿐 아니라 하늘의 역사와 문화 또한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무오(無誤)한 역사로 남기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온 인류는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하늘의 기자가 필요했고, 오늘날 이 땅의 기자가 필요했다.

이쯤에서 신종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대한민국 언론의 낯 뜨거운 민낯이 푸른 눈의 외국 기자의 예리한 관찰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방역 모범국이라는 칭송과는 사뭇 다르게 대한민국 기자들은 세계기자협회에 조롱거리로 전락해 회자하고 있는 것이다.

라파엘 라시드 기자가 뉴욕타임즈에 올린 기고문에서 “신천지가 이단이라 불리는 것과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비난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그런데 “대중과 언론, 일부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 두 가지를 동일시했다”고 꼬집으며 대한민국 언론과 기자의 품격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우리는 인류사를 통해 놓쳐선 안 될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수와 소수의 관계성이다. 시대마다 다수가 진리고 소수가 거짓이 아닌 늘 다수와 기득권은 거짓으로 위력을 삼았고, 소수가 조롱과 핍박 가운데서도 진리와 진실의 편에서 인류의 정의를 이끌어 왔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쯤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언론과 기자만큼은 지구에 멸망이 찾아온다 해도 힘과 권력과 기득권과 내 편이 아닌 사실의 편에 서서 진실의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기자가 돼야 하며, 나아가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돼야 한다. 그 나라 기자의 수준이 곧 그 나라 국민과 문화 수준의 가늠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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