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해마다 4월이면 지천으로 벚꽃이 활짝 핀다. 섬진강변의 화개장터 십리벚꽃길을 비롯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 전군가도, 여의도 윤중로는 이맘때면 무릉앵원이 펼쳐진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축제는 모두 취소됐지만 꽃은 어김없이 피었다. 다만 기후변화 탓인지 개화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가량 앞당겨져 이제 남쪽 지방에는 꽃비를 뿌리고 있다.

그런데 벚꽃만큼 가깝고도 먼 이중적 시선으로 보는 나무도 없는 듯 하다.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봄을 만끽하면서도 대놓고 벚꽃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벚나무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와 특히 일본의 이미지가 강한 탓이리라.

벚꽃 또는 벚나무의 일본말은 ‘사쿠라’이다. 벚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져 왔다. 벚꽃은 일찍이 일본 신화에도 등장했고, 필 때는 일제히 화려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눈이 내리듯 순식간에 지는 모습이 일본 사무라이들의 전통적인 인생관에 비유되기도 하면서 일본인에게 가장 친숙한 꽃으로 뿌리내렸다. 우리 옛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매화를 좋아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벚꽃 명소가 있는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한국의 주요 벚꽃 명소인 여의도 윤중로나 진해의 벚나무를 비롯해 전국에 심은 벚나무 대부분은 일본산 왕벚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은 일본강점기 직전인 1908년이었으며 반세기가 지난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은 “벚꽃은 우리 꽃-한라산이 원산지”란 주장을 폈다. 실제로 한라산에서 우리나라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하기도 했으니 벚꽃을 무조건 일본의 꽃으로 여길 필요는 전혀 없는 셈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해독을 통해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역사기록에도 벚나무가 우리 선조들의 삶과 매우 밀착돼 있음이 곳곳에 발견된다. 고려시대 제작한 팔만대장경의 판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최근 조사에서 밝혀졌으며,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화피 89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벚나무 껍질인 화피는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물자였다. 그래서 평안도와 함길도 등에서는 공물로 국가에 바쳤음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돼 있다.

흔히 정계에서는 벚꽃의 일본어인 ‘사쿠라’를 변절자 혹은 진짜를 위장한 ‘가짜’를 이르는 속어로 많이 써 왔다. 그런데 가짜나 변절자의 의미로 사용하는 속칭 ‘사쿠라’라는 표현은 벚꽃인 사쿠라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둘을 동일한 것이라 생각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변절자를 가리키는 이 말의 어원은 일본어의 ‘사쿠라니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쿠라니쿠는 색깔이 벚꽃과 같이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가리키는 말로서, 쇠고기인 줄 알고 샀는데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얘기다. 즉, 겉보기는 비슷하나 사실은 다른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치 환경이 바뀜으로 해서 종래의 자기 조직을 이탈하는 양상이 많아지자 변절한 옛 동지를 비꼬는 말로 쓰였다. 이를 잘못 이해한 일부 정치인들이 변절자를 일컬어 사쿠라꽃이 만발했느니, 사쿠라가 피었느니 하는 비유적 표현을 써 벚꽃(사쿠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게 됐다.

하지만 꽃과 나무, 자연은 아무런 죄가 없다.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는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벌을 부르고, 새잎 내고, 열매 맺으며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부산한 인간만이 이러쿵 저러쿵 난리를 피울 뿐. 올해도 어김없이 삼천리 방방곡곡 사쿠라는 활짝 피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