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의 아침평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정라곤의 아침평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라곤 논설실장 시인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이하생략).’

이 시는 영국의 시인 T.S.엘리엇(1888~1965)이 1922년에 발표한 ‘황무지(The Waste Land, 荒蕪地)’라는 장시다. 1부 ‘죽은 자의 매장’에서 5부 ‘천둥이 한 말’까지 긴 시문이지만 문학을 전공하거나 관심 있는 자가 아닌 장삼이사(張三李四)라 하더라도 겨울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만물이 소생하는 봄 계절의 기운을 받으면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 위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대목까지는 쉽게 읊조리곤 한다. 전체 단락에서 본다면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인들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어려운 시 내용이지만 그만큼 엘리엇의 시 황무지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4월의 대표시로서 일반화 됐다고 할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요즘 전 세계가 떠들썩한 코로나19 시국을 맞아서 한 달 이상을 행동에 제한받으니 시에서 나오는 ‘겨울은 (봄 또는 4월보다) 오히려 따뜻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무려면 봄 계절에 꽃샘추위가 있기로서니 혹한의 겨울보다 따뜻하겠냐마는 경제적 위기가 닥쳐 실업자가 속출하고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서민들의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는 지금 이 시기는 정신적으로 조금씩 황폐해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국민 모두가 힘겨워하고 어려운 시기에 4.15총선을 맞았으니 정치인들만 요란하고 살맛나는 판을 만났다. 생각 같았으면 국가적 재난과 다름없는 시기에 설령 선거기가 닥쳤다 하더라도 정당과 후보자들이 알아서 조용히 선거운동하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확진자와 그 가족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사망자가 192명이 넘었는데도 후보자들은 선거로고송을 틀고 요란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으니 별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각박한 현실에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정치라는 것은 무엇이고,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의 꽃이기는 할까. 또 국민이 어려움에 처한 지금, 국가의 의무는 어떠해야 하고, 정부․여당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등등, 생각하니 분명 이 길은 아니다 싶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 시국을 맞은 엄중한 현 상황에서 총선 정국과 겹치다 보니 총선과 관련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바, 선거에 나선 정당들이 그 본분과 대의(大義)에 맞지 않는 행동을 일삼는 가운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소위 양대 거대정당의 횡포는 눈꼴사납다. 

무엇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라는 어쩌면 한국정치사에서 소수정당이 국회에 들어와 국정을 논하면서 각기각층을 대변하는 민의의 정치가 될까했는데, 단순히 거대양당이 의석수 확보를 노리는 못된 술수에 막혀버렸다. 이름하여 ‘위성정당’이 어디 될법한 일인가. 이는 국민의 건전한 정치참여를 봉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정당정치를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다. 정당은 평상시에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책임 있는 정책을 수행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 아닌가. 

또 민주당,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처럼 정당이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만 낸다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적극 참여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서 정당제도 취지를 왜곡하고 국민정서에도 반하는 일이다. 거기다가 여당은 꼼수 위성정당 비례당 홍보에 치중해 중앙선관위에서 위법임을 지적받고서도 오히려 선관위의 준법 지시에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는 독불장군 모습이다. 제1야당도 위성정당을 위해 바치는 충정이 눈물겹게 진행되고 있으니 4.15총선 풍경이 정치꾼들의 난장판일 뿐이지 국민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이 시기가 정치현실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가 일반국민의 건전한 상식, 보편적 판단을 마비시키며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은 총선 왜곡의 영향이 크다. 경제가 망한 상태에서 분명 코로나 재앙이 정부 대처 미흡에서 확산됐건만 피해자들에게 위로 한마디 없이 그저 정부가 잘해서 ‘코로나 모범국’이 됐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국민가슴에 대못을 박는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4.15총선에 임해야 할 것인지 답답한데, 그 답처럼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나오는 1부 끝 소절은 긴 여운을 남긴다.  

‘…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이하생략).’ 정말 답답한 현실 속의 4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