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양주 대모산성
양주 대모산성

고구려식 들여쌓기 축성

대모산은 해발 212 로 양주시 유양동과 백석읍 방성리에 연접해 있다. 평지형을 이루고 있는 대모산의 산꼭대기를 돌아가면서 돌로 견고하게 쌓았다. 테메식으로 보이지만 백제 초축을 감안하면 2~3중의 계단식 축성으로 이례적인 방식이다.

축성방법은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비스듬하게 들여쌓기로 하여 고구려식임을 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 고구려왕도 국내성, 환도산성, 오녀산성 등에 나타나는 축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식을 보여주는 치(雉)는 찾지 못했다.

양주 대모산성은 <삼국사기> <세종실록>의 기사를 근거로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되기도 한다. 매초성은 675년 신라군이 당나라 대군 2만 명을 대파한 곳이다. 그러나 필자는 매초성은 지금의 연천 소성리 산성으로 비정한 바 있다(추후 연천 매초성 다룰 예정).

이밖에 <여지승람> <만기요람(萬機要覽)> <경기지(京畿誌)> <경기읍지(京畿邑誌)>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된다.

문화재 대관에는 성벽의 둘레를 1400m로 기록하고 있으나 아래 마한시기부터 구축한 성을 포함하면 훨씬 길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의 높이는 4~5m 안팎이나 너비는 주변의 지세에 따라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쯤 된다. 서북쪽 성벽이 잘 남아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성 내부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여러 곳 있으며, 지표에는 둥근 주춧돌 여러 개가 노출되어 있고 또 주변에는 많은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고 돼 있다.

글마루 취재반은 산성에서 마한시기 조질 토기조각과 고 신라 와편을 찾았다. 신라 와편은 굵은 선조문으로 회색을 띠고 있다. 경주 왕도 반월성(재성) 유적에서 찾아지는 유형의 와편이다. 신라군은 고구려로부터 성을 정복하고 많은 건축물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찾아지는 것은 고려, 조선시대 와편이다. 나뭇잎이 쌓여 적색의 고구려 기와는 찾지 못했다.

대모산성에서 찾은 와편
대모산성에서 찾은 와편

천보산이 병풍처럼 막아선 ‘큰 테미’

양주시에서 또 주목되는 곳이 바로 고읍지구에 있는 ‘큰 퇴미’다. 해발 219m의 이 구릉산은 불곡산과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 대모산성에 이어 마한 시기 치소가 될 수 있는 입지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대모산보다 더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퇴뫼 혹은 테미는 바로 토성을 지칭한 표현이다. 전국적으로 퇴미라는 지명을 조사하면 반드시 토성의 유구를 찾을 수 있다. 양주 큰 테미는 과연 어떤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혹 마한 모수국의 고지는 아닐까.

취재반은 대모산성에 이어 2차로 ‘큰 테미’를 조사했다.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이 다 그렇듯이 큰 테미도 육안으로는 밋밋한 구릉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완연한 토축의 성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취재반이 밝힌 개가이다.

이 토성이 대모산성보다 앞선 시대의 유적이라고 보는 것은 토루에 할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벽은 삭토하고 흙을 다져 토루를 만든 형태다. 주변에서 토기편이 수습된다. 마한 모수국 시기로 보이는 와질토기 조질 적색토기 파편이 수습되고 있다. 성 안에는 넓은 대지가 나타나고 있다. 이 성에 대한 비밀을 풀려면 확대된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취재반은 성지에서 수많은 고분군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고분은 초기 철기시대 특징인 석관묘로 보이며 고분이 발견된 지역에서는 많은 석재들이 나뒹구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눈이 쌓인 현장에서 초기 철기 시대 토기편 등 유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

고구려는 양주 모수성을 점령한 후 이 ‘큰 테미’보다는 방어와 취락에 이점이 있는 대모산성 지역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대모산성 정상에 견고한 고구려식 석성을 축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주시 문화재 당국의 특별한 관심과 학술조사 등 조치가 긴요하다.

철기시대 석관묘로 보이는 고분군이 확인됐다.
철기시대 석관묘로 보이는 고분군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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