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에서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텅텅 빈 마트를 봤을 때 정말 충격이 컸어요. 이제는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조차 마스크는 기본에 장갑까지 몇 겹을 낀 채로 갑니다.”

6일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33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는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를 포함해 향후 1~2주가 가장 힘든 주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국가비상사태’ 상황의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미국에서 12년째 거주 중인 이미연(가명, 43, 간호사)씨를 통해 현재 상황을 들어봤다. 이씨는 미국 내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각한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다. 이날 기준 뉴욕주의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8327명 늘어난 12만 2031명이다. 사망자는 전날보다 594명이 늘어난 4159명이다.

뉴욕에서 배달은 되지만 슈퍼마켓, 약국, 우체국 등 몇 개 분야를 제외한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 씨는 “사재기로 큰 마트나 작은 슈퍼마켓이나 거의 비어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며 “특히 소독제 종류는 아무리 많은 곳을 방문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인터넷 쇼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씨는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화장지, 키친타월 등은 매진이라 구매할 수가 없었다”며 “분유까지 사재기해서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먹을 분유가 없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 근무 중인 이씨는 현재 자택근무 중이다. 비디오 장치를 통해 담당 환자에 대한 원격진료를 하는 것이다. 이씨는 그러나 직장 내 몇 명은 코로나 사태 이후 해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월 마지막 2주간 약 1천만명이 실업수당을 청구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실업대란’은 현실화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습격에 미국 뉴욕 맨해튼 지하철이 텅 비어있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 최대 확산지다. (뉴욕 교민 제공) ⓒ천지일보 2020.4.6
[천지일보=이솜 기자]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습격에 미국 뉴욕 맨해튼 지하철이 텅 비어있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 최대 확산지다. (뉴욕 교민 제공) ⓒ천지일보 2020.4.6

미국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마스크’다.

이씨는 “원래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고 길을 다닌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라며 “나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2월부터 마스크를 착용했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어떤 10대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나에게 ‘마스크 벗어라!(take off your mask)’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몇 명의 시민들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타려는 중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들이 다 사라져있었다”며 “내가 동양인인데다가 마스크까지 써서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3주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쓰고 공원에 나가면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사례들은 “아픈 사람이 마스크를 쓴다”는 편견과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결합된 것으로, 실제 코로나19로 인해 발병국인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인들이 미국에서 겪는 인종차별은 심각하다. 이씨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동양인을 흑인이 폭행한 경우가 있었고, 뉴욕의 한인타운에서도 한 한국인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이 그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며 “나도 한국인으로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몇 주째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지만 불가피하게 밖에 나가야할 때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것 조차도 조심하게 된다”며 “쓰레기를 버리거나 우편함을 보러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몇 겹이나 끼고 간다”고 말했다. 뉴욕은 집에 세탁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세탁기들이 건물 지하에 있거나 세탁소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 코로나 사태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직 세탁을 하지 않아서 집에 세탁물이 쌓여 있다. 아이 옷만 집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다”며 “세탁실에서 세탁하는 것은 코로나에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언젠간 세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없는 늦은 밤에 세탁실에 가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검사 기준에 대해서는, 증상이 있는 의심자를 중심으로 검사를 하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을 했을지라도 증상이 없다면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 증상이 있더라도 가벼우면 집에서 격리하도록 권장한다”며 “지인들도 증상이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갔는데, 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진 않고 그냥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뉴욕주 일부 병원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장비와 인력이 부족해 10센트에 불과한 검진 면봉마저 동이 나 의료진들이 자체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 거리가 한산하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 최대 확산지로, 이날 기준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8327명 늘어난 12만 2031명이다. 사망자는 전날보다 594명이 늘어난 4159명이다. (뉴욕 교민 제공) ⓒ천지일보 2020.4.6
[천지일보=이솜 기자]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 거리가 한산하다. 뉴욕주는 미국 내 코로나19 최대 확산지로, 이날 기준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8327명 늘어난 12만 2031명이다. 사망자는 전날보다 594명이 늘어난 4159명이다. (뉴욕 교민 제공) ⓒ천지일보 2020.4.6

미국에는 허리케인 등 과거에도 재난이 있었으나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다. 이씨는 “허리케인 역시 치명적인 사건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나 또한 피해 입은 가정에 가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며 “코로나 사태는 일부가 아닌 전체의 문제다. 누구나 쉽게 감염될 수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했다.

처음 겪는 미국.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의료기술이 뛰어난 선진국인 미국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국에서 33만명 이상의 확진자와 1만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국, 특히 뉴욕은 통제가 되지 않는 곳입니다. 길가에 수북한 쓰레기나 더러운 지하철 등을 보면서 왜 이럴까 생각을 해왔습니다. 자유가 보장돼 있어서 그런 것인지, 교육이 제대로 안 된 것일지요. 그래서 코로나19가 다른 나라에서 발병했을 때 뉴욕에서도 일단 생기면 통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했습니다. 미국이 선진 국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겪을 때마다 그게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