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4.7)은 제64회 신문의 날이다. 1896년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된 4월 7일을 기념하고자 언론인들이 나서서 1957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만들었던 것이다.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언론인의 자유와 품위 등을 강조하기 위한 이날을 시발점으로 해 언론계는 해마다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그 해의 행동지표로서 표어를 제정하고 있으며, 한 주 동안 각종 신문주간 기념행사를 가지면서 신문의 중요성을 널리 일깨우고 있다.

신문의 날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행동지표로서의 표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올해의 표어는 ‘신문, 진실을 발견하는 습관’이다. 특히 요즘같이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에서 신문이 우리사회의 진실을 밝혀내는 최상의 매체임을 잘 표현한 이 표어 내용은 신문의 중요성과 함께 일반 독자들이 왜 신문을 접해야 하는 가를 명쾌하게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시대에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매체들이 많고도 많지만 신문은 활자화돼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독자들이 인터넷이나 SNS 등 각종 매개체보다 종이신문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한 단 하나의 이유로 10여년 전 신문 환경이 좋지 못해 곧 사라질 것 같았던 종이신문들은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긴 해도 종이신문의 발행인이나 기자들의 바른 시각이 좋은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다지는바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타고 신문사에서도 사이비 기사나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한결같은 모습으로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면서 정의롭게 행진하는 참 언론상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국가․사회가 혼탁할수록 언론이 제자리 찾아 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하건만 일부 언론은 권력을 비호하거나 방패막이로 전락해 진실을 덮는데 이용당하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그 편에 서서 권력 맛을 동감하려 하니 독자들에게 사이비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 언론의 발전상을 시기하면서 발목잡기 하는 언론도 있었으니 코로나19 정국에서 벌어진 일부 기독언론의 작태가 꼴불견이었던 게 최근 양상이기도하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로 넘어오는 사이 우리사회에서는 조국과 반(反)조국 논리로 날밤을 새우면서 국민여론은 두 편으로 갈라졌다. 이념의 양 칼날이 서로 상대를 견주면서 생겨난 일이지만 진보 측 언론에서는 의도적으로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다른 쪽인 보수언론에서는 반조국의 입장을 보였으니 아직도 이 사단에서 헤매는 중인데 그 와중에 전면에 나타난 현상이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편파적 언론에서는 ‘조국옹호 = 윤석열 쳐내기’ 도식화 인상이 역력한바, 여권이 ‘윤석열 검찰이 죽어야 문재인 정권이 산다’고 판단, 필사적으로 프레임을 걸고 있다고 주장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해도 친 정권 성향 언론, 특히 방송사들은 미리 짜 맞추기 한 듯 ‘검찰·언론 간 유착’ 의혹 보도를 방송사가 돌아가며 시리즈로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지난 2일 오전에는 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검․언 유착’ 의혹을 방송사에 제보한 모씨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날 밤에는 TV 시사 프로그램이 또 그 당사자를 출연시켜 모습을 가린 장막(帳幕)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모 방송사의 그 인터뷰가 첫 보도된 이후 연일 뉴스에서 검·언 유착 의혹을 보도할 뿐 아니라 진보측 인사까지 동원해 인터뷰를 내 보내는 등 편파 보도가 극성을 부린다.

언론의 가치는 공정성에 있고 언론인의 사명은 사회현상을 왜곡하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수집․보도하는 데 있다. 언론이 특정집단에 휘둘리고 권력 맛을 들인다면 제4부(府)의 역할은 요원할 터, 위 몇몇 친 정부성향 방송사의 의도적 행동은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검찰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사기전과자가 ‘윤석열 의혹’을 띄우면 친여 매체들이 들고 일어나서 뭇매를 가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으로 신문의 날에 이들을 언론 동행이라 칭하기조차 부끄럽다.

또 하나, 코로나19 정국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일부 기독언론이 보인 행태는 참 언론이기를 포기한 면이 있어 본지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그쪽 언론에서는 나이테로 쳤을 때 걸음마를 시작한 천지일보에 대해 거짓내용으로 가혹할 만큼 시비를 건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실체적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아니하고 본지의 성장발전세를 시기하는 양 의도적으로 공격했지만 올곧은 글의 힘을 믿는 천지일보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종이신문 환경이 어렵던 2009년, 그해 첫 가을이 찾아들 때 창간된 천지일보는 매년 신문의 날이 닥칠 때마다 정론직필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해왔다. 그 세월 속에서 모진 풍파를 겪어내며 얻은 값진 경험은 신문이 신문으로서의 본분을, 또 언론인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할 때 우리 국가․사회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인즉, 제64회 신문의 날을 맞으면서 천지일보는 초심을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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