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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진본여부 관건..용두사미 수사 재탕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2년 전 용두사미식 수사 논란 속에 일단락됐던 '탤런트 장자연 자살사건'이 장씨가 작성했다는 편지가 추가로 공개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이어서 사건 실체가 속시원히 파헤쳐질지 주목된다.

하지만 당시와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의문만 증폭시키다 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찰은 2009년 7월 4개월여의 수사 끝에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20명 중 7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장씨의 전 소속 기획사 대표 김모 씨와 전 매니저 유모 씨 등 2명을 폭행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 법원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으나 성상납 강요와 사회 유력인사들 연루 등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의문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성상납ㆍ술접대 강요 있었나 = 『같은 회사 연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 ○○ 만지고…정말이야 정말 죽고 싶고 모든 걸 다 끝내버리고 싶다.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비참해.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중략- 그렇게 내가 2008년 지금까지 2007년 중반경부터 지금까지 ○○일보 회장부터 감독, PD 순서대로 몇 명을 오빠에게 말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만 해도 20명도 넘잖아. 감독, PD들은 기본 당연 코스 이런 식이고. 김사장 말 `스타가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일이라는 식'으로…』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 김씨의 형사재판 기록에 첨부된 장씨의 편지 사본들에는 장씨가 언론사와 기업, 기획사 대표, 방송사 PD등으로부터 성접대를 강요당했음을 암시하는 내용과 이로 인한 수치심, 분노가 넘쳐흐른다.

제출된 자료에는 생략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31명을 특정해 명단을 만들어 놓았음을 시사하는 부분도 있다.

총 200여쪽이 넘는 이 편지들은 교도소에 수감된 지인 전모(31) 씨가 수십차례에 걸쳐 장씨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편지들에서 장씨는 자신을 `설화(눈꽃)'라 칭하며 자신이 잘못되면 복수를 해달라고 전씨에게 하소연했다.

검찰과 경찰은 2년전 수사 때 장씨가 작성했다는 이른바 '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인사 대부분에 대해 구체적 범죄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혐의 또는 내사종결 처리하고 김씨와 유씨 등 2명만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에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장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과 술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언론이 보도되며 수사가 본격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양과 내용에서 2년 전 문건보다 훨씬 방대하고 구체적이어서 장씨가 직접 쓴 것으로 최종 판명되면 성상납과 술접대 강요, 사회 유력자 연루 여부 등과 관련된 의혹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편지는 장씨가 쓴 진본인가 = 2009년 수사 당시처럼 이번 문건도 진본 여부를 의심받는다.

경찰은 일단 장씨의 지인을 자처하는 전씨로부터 압수한 편지봉투 사본에서 일부 조작 흔적이 발견됐다며 편지의 진본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는 눈치다.

경찰은 ▲편지 봉투에 찍힌 우체국 소인 부분이 뭔가 감추려는 듯 일부 잘려나갔고 ▲전씨의 교도소 우편물 수발기록에 장씨 이름이 없으며 ▲전씨가 교도소에서 정신병력 치료를 받았고, 연예계 소식에 편집증적 집착을 보였다는 점 등을 들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편지내용이 워낙 구체적이고, 일관성을 띠고 있는데다, 심적 고통과 수치심, 분노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본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편지가 가짜라면 전씨가 무슨 이유로 이것을 법원에 제출해 쟁점화하려 했는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편지 사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필적 및 지문감정을 의뢰했으며 결과는 14일이나 15일께 나올 전망이다. 경찰은 감정결과를 통보받아도 다른 조사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과를 밝힐 계획이다.
◇장씨-전씨 아는 사이인가 = 경찰은 또 장씨와 오랜 기간 편지를 주고받았고 오빠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관계였다는 전씨의 주장에 의문을 갖고있다.

두 사람의 고향이 다르고, 전씨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한 달간을 제외하곤 5곳의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수감돼 있었으며, 장씨와 통화한 내역이 없고, 면회 기록도 없는 점 등이 그 근거이다.

경찰은 2년 전에도 전씨가 `왕첸첸'이란 이름으로 장씨의 심경 고백을 담은 내용을 언론사에 보내 기사화되자 교도소로 정씨를 찾아가 조사했으나 언론보도를 본 뒤 상상해 편지를 보낸 것으로 판단된다며 장씨 주장을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장씨와 1980년생 동갑내기인 전씨는 10여년 전인 고 1~3학년 때부터 장씨와 친구로 지내며 편지를 교환했고, 수감 이후에도 장씨를 '설화'라고 부르며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전씨는 또 "장씨의 억울한 죽음이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해 지인들에게 (장씨로부터 받은 편지를 등기로) 여러 차례 보낸 사실이 있다"고 경찰 조사에서 밝혔다.

◇경찰 수사의지 있나 = 경찰은 일단 장씨의 편지가 진본으로 드러나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10일 국회에 출석해 "친필이라면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는 모든 부분을 수사하겠다"며 "이번에 발견된 편지가 진본이면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과 수사 단서가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따라 전씨가 수감돼 있는 광주교도소를 압수수색해 장씨 편지로 추정되는 원본 23장을 확보, 국과수에 필적 및 지문감정을 의뢰하는 등 수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전씨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은 여전해 수사에 다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있다.

검찰과 경찰은 2009년 당시 장씨 전 소속사 대표 김씨와 매니저 유씨 등 2명을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성상납 강요 등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줘 시작만 요란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는 `용두사미식' 수사란 비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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