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내부모순(內部矛盾)
[고전 속 정치이야기] 내부모순(內部矛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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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거란족으로 요를 세운 야율아보기의 형제들은 세 차례의 반란을 일으켰다. 첫 번째 반란은 911년 5월에 발생했다. 자갈(刺葛), 질자(迭刺), 인저석(寅底石), 안단(安端) 등이 반란을 계획했지만, 안단의 처자가 밀고해 실패했다. 차마 형제들을 죽일 수 없었던 아보기는 그들을 산으로 데려가 짐승을 죽여 하늘에 맹서하고 사면했다. 그러나 형제들은 이듬해 월할저(越轄底)를 중심으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새로 임명한 척은(惕隱) 활가(滑哥)도 가담했다. 7월에 아보기는 술불고부(術不姑部)를 정벌하고, 자갈에게 지금의 하북성 노룡(盧龍)인 평주(平州)를 치게 했다. 10월에 평주를 함락한 자갈은 아보기의 귀로를 가로막고 새로 가한선출대회를 강요했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아보기는 병력을 이끌고 남하해 전통에 따라 나무에 불을 붙이고 하늘에 고하는 ‘번시례(燔柴禮)’를 올리고 다시 가한으로 선출되었다. 아보기가 다시 합법적으로 가한이 되자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가 사라졌다. 그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반란을 평정함으로써 발군의 지혜를 갖춘 지도자로 각광을 받았다.

다음날 형제들은 잘못을 빌었다. 아보기도 그들의 죄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제들의 욕심은 줄지 않았다. 913년 3월, 그들이 세 번째 반란을 일으키자, 대규모 무력충돌이 불가피했다. 자갈을 새로운 가한으로 옹립하기로 결정한 그들은 질자와 안단을 아보기에게 보냈다. 두 사람은 기회를 노리다가 아보기를 협박해 자기들이 준비한 새로운 가한의 선발대회에 참가시키려고 했다. 본부족을 제외한 을실부(乙室部) 귀족들도 이들의 계획에 가담했다. 아보기는 질자와 안단부터 제압하고 친위대를 지휘해 자갈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자갈파의 인저석이 아보기의 행궁을 기습해 가한의 권력을 상징하는 깃발과 북을 비롯한 선조의 신장(神帳)을 탈취했다. 아보기의 아내 술률(述律)씨가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동안 원군이 도착했다. 도망치는 인저석의 부대를 추격해 깃발과 북을 간신히 회수했다.

아보기는 친히 북상해 자갈을 추격했다. 아보기의 친위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패한 자갈은 빼앗았던 신장을 버리고 도망쳤다. 아보기는 추격중지 명령을 내리고 반군의 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5월이 되자 아보기는 조금씩 병력을 움직여 자갈을 사로잡았다. 세 차례 반란을 평정한 아보기는 가족 가운데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무력진압 과정에서 부족의 경제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민간에도 1만여필의 말이 있었지만, 내부문제를 해결한 후 백성들은 외출할 때 말을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내부 불만자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7개 부족이 반대세력으로 남았다. 그들은 부족의 회의를 통해 가한을 선출하던 옛 제도를 회복시킨다는 명분으로 가한의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협박했다. 정면충돌보다 일단 요청을 들어주었다가 다시 가한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아보기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부족회의에 참석한 아보기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9년 동안 가한의 자리에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한족이 내 휘하로 들어왔다. 가한에서 물러나 본부족만 이끌고 한족들을 다스리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들이 동의했다. 한족의 거주지에 도착한 아보기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많은 소금과 철을 생산하여 경제도 잘 발달돼 있었다. 아보기는 아내 술률씨의 계책을 받아들여 여러 부족 수령들에게 말했다.

“소금을 공급하고 싶지만, 여러분들은 소금을 먹을 줄만 알고 염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나와 내 부하들의 수고에 보답해야 한다.”

그들이 소와 술을 가지고 찾아오자 아보기는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다음 모두 살해했다. 창업은 끊임없는 내부모순 제거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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