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택(1959 ~  ) 
 

팩은 있다, 온 몸이 쭈그러진 채

돌이킬 수 없이 부름을 받은 자세로

팩은, 아픈 얼굴로, 식어가는 몸으로

고통에 떨며 혀를 늘어뜨리고 죽음이 닿는 손을 뿌리치며

진저리치며 사라지는 이승에 마지막 목을 맨다.

눈을 반쯤 까집고 움켜쥔, 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마음으로 뛰어 들어오는 숨결을

앞에 두고, 가늘게, 가늘게 떤다.

긴 빨대를 등에 꽂은 채

 

[시평]

어느 길가 쭈그러져 버려진 종이 팩을 보고는, 문득 저 종이 팩, 얼마나 아프겠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에 의하여 빨리고 빨려 온 몸이 쭈그러진 채, 더구나 등에는 긴 플라스틱 빨대에 꽂힌 채, 나뒹굴 듯 버려진 종이 팩.

사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자신의 내면을 하나하나 비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산만큼, 나의 내면을 비워내고, 또 내일을 산만큼의 그 내면을 비어내며 살아가다가, 종국에는 텅텅 빈 껍데기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이 어쩜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자신에 의하여 비워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타인에 의하여 비워져야 하는 삶. 이러한 삶이 우리들 삶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등에는 끔찍한 빨대에 꽂힌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빨리 듯 비워내야 하는 삶. 실은 너나없이 모두에게 행해지는 삶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그라들어 팽개쳐진, 낭패된 삶을 맞이할 때가 우리에게는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소생할 수 없는 듯한 고통과 아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떠는, 그런 지경의 삶을 맞이할 때가, 우리에게 어쩌다가 있기도 하다. 마치 저 세상 한구석에서 나뒹구는, 등에는 긴 빨대를 꽂은 채, 쭈그러져 버려진 종이 팩 마냥.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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