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예전에 한창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던 시절 사석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 생애 다시 태어나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는 얘길 하곤 했다.

고목나무의 그 위풍과 풍취에 매료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생존 법칙인 자연 생태계에서 타 생명을 해하지 아니하고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나무의 진화가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자연의 본성에는 인격도 윤리도 없는 것이어서 생존을 위해 잡아먹고 또 잡아먹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측은지심과 인지상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보니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못내 불편했는데 나무, 아니 식물은 동물과 달리 그 관계를 넘어서는 적응기제를 진화시킨 것이다. 진화에는 발전도 진보도 없고, 또 높낮이도 없고, 오직 적응만 있을 뿐이라지만 굳이 인간의 시선으로 본다면 동물 보다 식물이 그 중에서도 나무가 가장 고등한 방식으로 진화한 생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최근 이 고매한 생물인 나무가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수난을 당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얼마 전에 수령 500년의 어느 마을 회화나무가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더니 이번엔 뜬금없이 천변의 가로수인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소리 소문 없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100년 전 근대 도시 운동을 이끌었던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래 유럽의 도시 곳곳에는 아름다운 숲과 공원이 조성되고 도시는 나무의 지상낙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말한다. 김 교수는 영국의 ‘국립공원도시 런던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며 “공원을 주거와 다른 공간으로 나누기보다는 주거를 공원 안의 집으로 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런 발상은 전체가 공원인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도시, 전체가 학교인 도시로 확장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야말로 도시 주거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무엇이든 대한민국 제1의 도시인 서울의 경우 현재 1인당 공원 면적이 런던의 33.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뉴욕의 14.7㎡와 유사하며 도쿄의 4.5㎡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인 16.80㎡라고 한다. 물론 수치에 대한 착시효과나 지역적 편차와 불균형이 있긴 하지만 이는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녹색의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서울시는 현재도 ‘3000만 그루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걷기 좋은 도시와 함께 녹지 도시의 꿈도 같이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과 비전도 오는 7월 도시공원일몰제로 미집행공원이 일몰됨에 따라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일몰제가 시행되면 현재 공원 면적의 79%가 다른 용도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숲이 우거진 도심공원은 1/5 이상 줄어들게 되며 몇몇 대형공원만 숲의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김 교수는 ‘여전히 우리는 공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공원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도심숲을 살리기 위한 예산과 시간을 확보해야하는 동시에 학교와 관공서 주변을 녹색의 공간으로 더욱 변화시키고 옥상과 마을의 벽면을 새로운 형태의 녹지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방치돼 있던 도로변의 거대한 빈 땅들을 과감하게 숲으로 개발하고 도로와 철도, 주차장 등은 지하화해서 서울의 경의선 숲길과 같은 도심숲 공간을 더욱 더 늘려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숲이 울창한 도시의 나라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심어야 한다.

며칠 후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이제는 다소 빛바랜 식목일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식목일날 산불이 최고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심는 나무 보다 태우는 나무가 더 많아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점도 유의하자.

화려하다 못해 눈이 시린 매화와 벚꽃, 개나리와 진달래, 동백과 목련이 만발한 꽃피는 이 계절에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며 봄꽃놀이를 즐기는 낯설고 괴이한 우리의 자화상이 우리가 왜 이 순간에도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를 통렬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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