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뒤에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일이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 여부는 나라마다의 문화적인 차이일 수 있기에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가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젊은 사람은 괜찮다는 인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 감염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는 것은 코로나19는 전 세계가 함께 힘을 모아 헤쳐 나가야 할 인류의 재앙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이는 누구의 잘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하루빨리 이 환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하자는 말이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아직도, 아니 아직까지도 비난하고 탓할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특히 4.15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를 정치적인 목적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이 더욱 역력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재난과 재앙을,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재앙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용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의 삶을 위해 타인과 이웃의 삶을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 나라를 맡길 것인가를 생각하니 코로나19보다 더 큰 재앙이 닥쳐올 것 같아 두렵기 그지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비방하며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 또 다른 누군가에 혹은 어딘가에 힘을 쓸어주려는 노력에 진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 노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신천지교회와 그 성도들이지 않은가 싶다.

이 말을 하면 또 적반하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비난부터 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제발이지 한 쪽의 말만을 그것도 소위 기득권이라 하는 이들이 쏟아내는 주장과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가짜 뉴스, 확인되지도 않은 ‘카더라’ 통신만을 믿고 비난하는 습성을 버리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바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인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다른 사람이 거짓을 사실처럼 말하면 그것이 옳다 하여 따를 것인가.

사람이란 자고로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옳음과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인류를 위한 위대한 사고는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일방적 주장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고 스스로가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류를 위한 위대한 사고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민중은 누구의 막말처럼 개, 돼지가 아니다. 개, 돼지와 같은 짐승은 생각할 줄 모른다. 이성이 없다는 말이며,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약육강식이라 했듯, 그저 힘 있는 자의 생각과 습성을 좇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기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여력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민중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민을 개, 돼지로 여기는 그 생각이 어찌 순간의 실수에서 한 막말이었겠는가. 유유상종이라 했다. 소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진정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면 코로나19라는 위기 앞에 남을 비난하고 헐뜯기에 앞서기보다, 이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 되자고 외쳤을 것이다.

나를 위해, 내가 속해 있는 정당을 위해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할 때 국민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으며, 비탄에 빠져간다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는 것인가. 신경이라도 쓰고 있는 것인가.

언론에도 부탁하고 싶다.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옳은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이 아님을 기본적으로 알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더라도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진실이라고 말한다고 다 사실이 아님을 안다면, 언론의 길을 택한 초심을 잃지 않고 명확한 사실이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그러한 진실을 발로 뛰어 알리는 것이지, 풍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풍문과 자극적인 뉴스에만 집착하다보니 언론이 진실을 알리는 것이 아닌 여론을 조작하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더러는 대놓고 가담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언론이라면, 언론인이라면 이젠 ‘자극적인 것’에서 벗어나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찾을 때다.

미디어의 홍수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는 진실과 거짓, 가짜 뉴스가 섞인 말 그대로 ‘홍수’가 난 세상 속에 살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홍수가 난 물을 마실 수는 없다.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마실 수 있는 맑은 물, 생명수와 같은 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다고 외쳐도 흙탕물이 좋다며 계속 그 물을 마신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 않을 수 없다. 선택은 이제 스스로의 몫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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