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시(詩)와 담배

오상순(1894 ~ 1963)

나와 시(詩)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詩魂)은
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시평]

공초(空超) 오상순 선생은 초탈한 도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세간에서는 담배를 무척 즐겨 많이 피운 것으로 더 유명하다. ‘공초(空超)’라는 호가 도인의 풍모를 떠올리기에 적합한 호이기도 하지만, 세간에서는 담배를 즐기는 ‘담배꽁초’의 변이라고도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초 선생을 간혹 꽁초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이태백이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달과 그림자와 내가 삼인이라고 노래했던가. 오상순 선생은 나와 시(詩)와 담배가 같은 색조를 띤 노래의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일갈한다. 시혼(詩魂)은 당신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연기로 끊임없이 샘솟듯 피어오르고, 그래서 시의 혼은 담배연기와 같이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한 순간 한 순간 물들어 스며든다고 노래하고 있다.
담배가 만인이 금해야 할 공공의 적이 된 오늘날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지금은 그 풍속도가 많이 변했지만, 시인에는 술과 담배가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같이 여겨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서울 명동 청동시대(靑銅時代)라는 이름의 다방에 저녁녘이면 모여들던 문학청년들. 이들을 둘러앉혀 놓고 문학과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하던 공초 선생, 그 주변으로 피어오르던 담배연기마냥 젊은 문학도들의 품속으로 시시각각(時時刻刻) 물들어 스며들던 선생의 말씀들. 오늘 더 없이 이런 어른이 그리워지는 시절이기도 하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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