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자연에게 좀 더 겸손하자
[환경칼럼] 자연에게 좀 더 겸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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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최초의 바이러스성 대유행(pandemic)은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돼 적어도 5000만명이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속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던 병사들이 바이러스를 공유한 채 비행기를 타고 제가끔 본국으로 돌아가 애먼 사람들에게 옮기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스페인 독감 발병 약 40년 후인 1957년 아시아 독감으로 다시 200만명,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968년 홍콩 독감으로 10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세계보건기구의 팬데믹 선포 후 현재 확진자는 사망자 1만 4510명을 포함해 33만 4981명으로 보고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이 코로나19의 새로운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나 남미 오지가 아니라 또다시 지구촌의 중심이자 경제와 과학기술문명의 최강 문명국인 미국과 유럽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주요 감염국이 된 점은 그동안 과학기술의 힘을 자랑해온 문명사회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이제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나 전염병은 과학기술과 의술의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단순한 질병의 수준을 넘어 지속적이고 다각적으로 인류의 문명과 생존을 위협하는 상시적인 위험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포괄적으로 생태계의 위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위기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이에 대한 맹신 그리고 그와 결합된 자본주의 이윤추구 논리에 있겠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논리를 합리화하고 그 사상 배경이 되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 생명이 존엄한 이유는 인간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요, 가치평가의 주체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한낱 인식의 대상이요, 가치 평가의 대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존재는 인간에게 인식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고, 인간이 관심을 갖는 한에서 가치를 지닌다. 인간중심주의에 따르면 우주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윤리적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며 따라서 다른 생명체 내지 자연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 인간중심주의자들은 다른 생명체들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그리고 생태계를 ‘인간을 위한 환경’으로 간주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가 인간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단순히 인간을 위한 환경으로만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서 확립할 수 있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를 자기보존이라는 미명하에 자신과 세계를 대상화, 수량화하는 계산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즉 후자의 관점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삶을 위해 얼마나 유용하고 쓸모 있는지를 밝히는 맥락에서만 평가된다. 나아가 사람도 효용성이라는 잣대에 의해 측정되고, 자연과 사물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착취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이것이 심화될 경우 자신까지도 이용 대상으로 삼게 되고 스스로 목적을 성찰하는 이성 고유의 기능은 잃은 채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이성 상실의 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것이 곧 아도르노가 말하는 ‘계몽이 자의식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며,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자연 파괴, 이로 인한 생태계의 위기이다.

문제는 이러한 총체적인 지배화의 과정은 그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즉 인간이 지배의 대상인 자연을 지배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되고 원자화된다. 여기서 계몽의 비극이 시작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고 서식처가 파괴된 동식물들이 서식처 바깥으로 끌려나오게 되고 그들의 몸에 있던 바이러스도 함께 끌려나오면서 새로운 숙주에게 옮아간다. 인간이 스스로 겁 없이 연 생태 판도라의 상자, 즉 인간의 무절제한 생태계 파괴가 결국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킬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진짜 이성적인 인간, 만물의 영장이 맞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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