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0.3.2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0.3.25

지난해부터 이어진 n번방 이슈

국회 입법 ‘부실’ 지적 잇따라

국회 ‘재발방지 3법’ 발의

법무부 “범죄단체조직죄 검토”

경찰 “특별수사본부 설치”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유포한 ‘n번방’ ‘박사방’ 사건에 대해 사회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이 연일 사과·반성의 메시지를 내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실효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늦장 대처가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25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을 대표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특수협박죄, 강요죄로 가중처벌하고 상습범 처벌 규정 신설 등의 형법 개정안 ▲불법촬영물을 스마트폰·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은 행위를 처벌하고, 카메라 등 불법촬영죄의 법정형 상향의 내용을 담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불법촬영물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형사처벌하는 등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다.

법무부는 전날인 24일 “처벌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중대범죄의 법정형을 상향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n번방 운영 가담자들의 범행이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상태 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경우 ‘범죄단체 조직죄(형법 제114조)’ 등 의율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법은 ‘사형, 무기 또는 징역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가입하는 경우’에 적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박사’ 조주빈과 ‘갓갓’을 비롯한 운영진뿐 아니라 가입자들에게도 엄벌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은 지난 2017년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해당 법을 처음 적용해 징역 20년을 확정한 바 있다.

법무부는 또 “범정부 차원 TF를 구성해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국제형사사법공조를 통해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고,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등 피해자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3.4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3.4

◆그나마 된 입법도 ‘알맹이’는 빠져

이 같이 쏟아지는 대책에도 ‘늦장·뒷북’ 대응이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이미 n번방 사건이 이슈화 된지 한참이지만 그간 진정성 있는 대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법무부는 지난해 9월부터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국회는 어떤 여지도 없다는 비판이다.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국회에서 n번방 관련 논의는 꾸준히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11일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의 논평을 시작으로 같은 달 26일 민주당 박성민 청년 대변인 논평 등 지속적으로 n번방 관련 내용이 언급됐다.

특히 올해 1월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라는 글이 국회의 국민청원인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왔고, 30일 동안 10만 명의 국민의 동의를 받아 관련위원회에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그 결과 해당 법안은 국회 국민청원 1호 법안으로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하지만 다른 성폭력특별법 개정안들과 같이 처리되면서 n번방 관련 내용이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27개 단체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국회는 제대로 된 입법으로 여성에 대한 성 착취를 근절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법이 ‘딥페이크(deepfake, 특정 인물의 얼굴·신체를 진짜처럼 합성한 편집물)’ 관련 내용에만 치중됐고,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천지일보 2019.10.1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천지일보 2019.10.17

◆정부·정치권 안일한 반응 도마에

법 논의 과정에서의 의원들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국회 속기록 등에 따르면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나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나”고 했고, 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갖고 혼자 즐긴다는 것까지 처벌에 갈 거냐”라고 말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n번방 사건은 잘 모른다”며서도 “(딥페이크가)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송 의원은 24일 “유포 목적이 없는 영상물 소지만으로 처벌하는 법 조항을 만드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는 발언”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사과·반성 내놓는 당국·정치권

국회의 이런 모습에 민주당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이날 “사이버 성착취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한 국회는 반성해야 하며,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이날 국회 현안보고에서 저희의 방지대책 등에도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해 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법무부도 전날의 입장문에서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는 ‘n번방 사건’이 그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이 빚은 참사임을 반성한다”고 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직접 “이런 세상에 우리 딸들의 미래가 있겠느냐는 심각한 우려에 대해 법무부 장관으로서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전날 “경찰청장으로서 이번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번 ‘n번방’ 수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에 체계적·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즉시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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