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고 신영복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감옥생활에 거의 익숙해 지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동화되어 농담도 주고받을 때였다고 한다. 동료 중에 애인이 있는 사람이 특박을 나가게 되면, 남은 동료들은 아무개 방에 오늘은 치마가 걸리겠다며 부러움의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표현보다 굉장히 순화된 표현이어서 그 이야기가 오래 인상에 남는다. 

최근에 알게 된 전기 사장님이 있는데 연세도 많으시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기 일로 잔뼈가 굵은 분이다. 어느 날 그 분께 파일을 첨부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파일이 안 왔다면서 전화가 왔다. 파일이 첨부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그 분은 화를 내기는커녕 너무 재미있는 표현을 쓰셔서 정겹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비가 내려서 그런것 같다며 파일에 우산을 씌워서 보내야 오려나보다 라고 하셨다. 표현이 너무 낭만적이고 재미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애써 이런 낭만적인 표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러한 낭만적인 표현은 사람을 참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낭만적이거나 재미있는 표현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평소에 그런 표현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평소에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표현 중에서 좋은 표현들을 수집해 놓고 따라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주로 책에서 많이 찾는 편이다. 더구나 고전에는 더 여유롭고 멋진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조상들의 여유있는 삶은 여유롭고, 낭만적이고, 해학적인 표현들을 가능하게 만든 것 같다. 

송순은 중종 28년(1533년)에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후에 세상을 떠나던 91세까지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이황과도 교류했으며, 임제, 정철 같은 후학과 함께 호남제일의 가단(歌壇)을 이뤘다. 그가 87세 때,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가 있었는데 유명인사 100여명이 참석해서 성황을 이루었고, 선조임금도 선물을 보내왔다고 한다. 잔치를 마치자 정철, 임제, 고경명, 이후백 등의 제자가 스승을 손가마에 태워 길을 갔다고 하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짐작컨대 제자들의 나이도 환갑은 족히 되었을 텐데 말이다.

송순이 읊은 다음의 시조는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준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달 한 칸 나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놓고 보노라.

이 시조를 가끔 떠올릴 때마다 필자는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연구소 가까이에 올림픽공원이 있다. 한 번도 내 공원이나 정원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송순처럼 생각을 바꾸어 내 공원이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세상이 각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애써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 봐야 한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말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낭만적인 표현의 아름다운 말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까지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해 두세 배의 행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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