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기원전 18세기에 탕왕은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추방하고 은나라를 세웠다. 탕왕은 “걸왕이 포학(暴虐)하여 천명(天命)에 따라 응징하려 한다”고 백성들에게 포고했다. <서경>의 ‘탕서(湯誓)’에 나온다.

그런데 탕왕이 즉위하자마자 은나라는 가뭄이 들었다. 그것도 7년간 계속됐다. 이는 하나라 시절보다 더 심했다. 백성들은 하늘의 재앙이라고 수군댔고 민심이 흉흉했다.

이러자 어떤 무당이 ‘사람을 제물(祭物)’로 하여 기우제를 지내야만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였다. 탕왕은 “백성 중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죽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고 나섰다.

탕왕은 거친 베옷을 입고 기우제 장소인 상림(桑林)으로 향했다. 상림에 도착하자 탕왕은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고 목욕재계하고 장작더미 위에 올라갔다. 그는 여섯 가지 일을 반성하면서 하늘에 빌었다.

“정치에 절제(節制)가 없어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까?, 궁전이 화려하고 사치스럽기 때문입니까?, 여자의 청탁이 심하고 정치가 공정하지 못한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행하여 정도(正道)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참소로 인하여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 하늘이시여, 모든 벌은 전부 저에게 내리시고 불쌍한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해 주소서.”

이러자 하늘도 감동하여 은나라 땅에 비가 내렸다.

탕왕의 반성은 이후 역대 군주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왕들은 재난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반성했다.

1475년(성종 6)에 가뭄이 들었다. 이러자 성종은 ‘나에게 잘못이 있는지, 뇌물이 횡행하는지, 충신과 간신이 혼동되었는지, 언로(言路)가 막혔는지?’ 등 15가지를 자성(自省)했다.

1670년(현종 11)에 가뭄과 수해가 나자 현종은 하교를 내렸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오늘부터 허물을 반성하여 조금이나마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려 한다.”

1725년(영조 1)에 가뭄과 역질이 돌았다. 영조도 ‘나의 허물’이라고 반성했다.

“아!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장차 어떻게 백성의 구실을 하며, 나라가 백성이 없으면 장차 어떻게 나라의 구실을 하겠는가? 아! 8도 백성의 곤궁하고 초췌함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한데다 해마다 거듭 흉년이 들고 역질마저 겹쳤으니 슬프도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진실로 나의 허물이다. 아! 백성들이 나의 덕이 부족한 탓으로 인하여 이런 참혹한 재해를 맞았다.”

코로나19에 대해 WHO가 뒤늦게 팬데믹을 선언하자, 지구촌은 공포에 빠졌다. 미국은 헛발질이고 유럽은 초토화됐다. 중국은 코로나가 진정되자, 진원지가 우한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그나마 싱가포르와 대만이 돋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코로나는 조금 진정 국면이나, 문 대통령은 18일 주요경제주체 원탁회의에서 “방역과 경제 양면에서 아주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라를 살리려면 과감히 행동하시라. 총선 표 계산하지 말고 산업·노동·금융 등 모든 분야에 있어 개혁을 조속히 하시라. 이런 개혁은 돈도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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